이름은 '배터리'지만, 이 유물이 실제로 전지로 쓰였다는 증거는 없다. 사건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항아리에 산성 액체(식초·과즙 등)를 채우면 1볼트 미만의 약한 전류가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고대인이 전기를 알고 사용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셀레우키아(Seleucia) 등 인근 유적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의 용기가 두루마리(파피루스) 보관용으로 출토된 점, 전선이나 배선의 흔적이 전혀 없는 점 때문에, 오늘날 고고학계의 다수 의견은 '두루마리·문서 보관 용기'설로 기운다. '고대 전지'는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추정에서 출발한 가설이며, 그 위에 'OOPArt(시대착오적 유물)'·'잃어버린 고대 전기 문명'·'고대 외계인' 같은 서사가 덧붙여졌다.
배경 — 한 박물관 관장의 추정
쾨니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바그다드 박물관에 있던, 표면이 얇은 은으로 도금된 듯한 구리 유물들을 보고, 고대인이 이 '전지'들을 여러 개 연결해 금·은 도금(전기도금, electroplating)에 썼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1938~1940년 무렵 발표했다. '고대 전지로 도금을 했다'는 이 두 단계 추정이, 이후 모든 '고대 전기 문명' 서사의 출발점이 된다.
타임라인
기원전 250경~서기 650경
파르티아~사산조 시대. 유물 제작 시기로 추정(연대 미확정)
1936경
바그다드 인근 쿠주트 라부에서 항아리 유물 발굴(정황 기록 부실)
1938
박물관 관장 빌헬름 쾨니히가 수장고에서 재발견, '고대 전지' 가설 제기
1938~1940
쾨니히, '전지를 이용한 전기도금'설을 논문으로 발표
1940
GE 기술자 윌러드 그레이가 복제품 제작, 황산구리 용액으로 약 0.5V 발생 확인
2005
TV 프로그램 '미스버스터즈', 복제품 10개를 직렬 연결해 약 4볼트 측정
2003
이라크 전쟁 중 이라크 국립박물관 약탈, 유물의 현재 소재 불명
유물과 분석 / 확인된 사실
핵심 의문 — 전지였나, 보관 용기였나
이 사건의 의문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구리 원통과 철 막대가 든 점토 항아리는 고대인의 '전지'였는가, 아니면 두루마리를 담던 평범한 '용기'였는가. 두 진영의 출발점은 같은 유물이지만, 해석의 무게중심이 정반대다.
'전지'설은 두 가지 인상에 기댄다. 첫째, 구조가 우연이라기엔 너무 '전지스럽다'는 점이다. 산성 전해질만 채우면 실제로 미약한 전류가 흐른다는 것은 재현 실험으로도 확인됐다. 둘째, 쾨니히가 본 '은 도금된 구리 유물'이 전기도금의 산물이라면, 그 전원으로 이 항아리를 상정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용기'설은 맥락과 부재(不在)를 근거로 삼는다. 같은 양식의 용기가 두루마리 보관용으로 출토됐다는 사실, 그리고 정작 '전기 사용'을 뒷받침할 배선·도선·도구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고전학자 맥대니얼(McDaniel)은 "셀레우키아에서 나온 용기들은 이른바 '바그다드 전지'와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안에서 파피루스 두루마리의 흔적이 나왔기 때문에 그것이 두루마리를 담는 용도였음을 우리는 안다"고 정리한다.
가설
현재 상태 / 남은 의문
정리하면, 바그다드 배터리는 '미해결 수수께끼'라기보다 '한 사람의 추정이 대중문화 속에서 신화로 굳어진' 사례에 가깝다. "산을 채우면 전류가 나온다"는 사실은 맞지만, 그것은 구리와 철과 산이 만나면 일어나는 전기화학의 당연한 결과일 뿐, 고대인이 그 전류를 의도하고 사용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닮은꼴 용기들의 용도(두루마리 보관)와 전기 흔적의 완전한 부재는 '평범한 용기'쪽을 가리킨다.
남은 의문은 초자연이나 외계의 영역이 아니라, 고고학과 보존의 영역에 있다. 바그다드 항아리 안에는 원래 무엇이 들어 있었는가(분해된 두루마리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제작 연대가 파르티아인지 사산조인지는 정밀 분석 없이는 확정하기 어렵다. 유물이 사라진 지금, 이 의문들은 당분간 열린 채로 남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배터리'라는 별명이 유물의 정체를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가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