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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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해결음모론

로스앤젤레스 전투

1942년 2월 진주만 공습과 일본 잠수함 포격 직후, 로스앤젤레스 상공의 미확인 물체 보고에 대공포대가 밤새 1,400발 넘게 발포한 사건. 적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공식 설명은 전쟁 신경증과 기상관측 풍선 오인이었으나 UFO설의 소재로 남았다.

1942년 2월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11분 분량

개요

이 사건의 핵심은 '무엇이 격추되었나'가 아니라 '적기도 폭격도 없는데 왜 1,400발을 쏘았나'라는 점이다. 적의 실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잡히지 않았고, 남은 것은 탐조등이 교차하는 한 장의 사진과 서로 어긋나는 정부의 발표뿐이었다. 이 글은 ⑴ 확인된 사실, ⑵ 공식 설명, ⑶ 검증되지 않은 UFO·은폐설을 명확히 구분해 읽는다.

배경 — 진주만 이후의 공포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은 미국 서부 해안에 깊은 불안을 남겼다. 일본 함대가 캘리포니아 앞바다에 나타나 도시를 폭격하거나 상륙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일상이 됐고,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Henry Stimson)은 도시들이 적의 "이따금씩의 타격(occasional blows)"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같은 시기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1942년 2월 19일 행정명령 9066호)이 결정되는 등, 서부 해안 전체가 전시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이 불안에 결정적인 불을 댕긴 것이 사건 바로 전날의 실제 포격이었다.

엘우드 포격 하루 만에 로스앤젤레스 상공의 소동이 터졌다. 즉 로스앤젤레스 전투는 진공 상태에서 생긴 패닉이 아니라, 불과 24시간 전 실제 적의 공격을 겪은 도시의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 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타임라인

  1. 1941-12-07
    일본의 진주만 공습 — 미국 서부 해안에 본토 공격 공포 확산
  2. 1942-02-19
    행정명령 9066호 — 서부 해안의 전시 긴장 고조
  3. 1942-02-23
    일본 잠수함 I-17이 산타바버라 인근 엘우드 유전을 함포로 포격(경미한 피해)
  4. 1942-02-24 19:18
    방위 공장 인근에서 섬광·점멸등이 보인다는 보고로 1차 경보 발령
  5. 1942-02-24 22:23
    1차 경보 해제
  6. 1942-02-25 02:25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전역에 공습경보 사이렌, 등화관제 시행
  7. 1942-02-25 03:16
    제37해안포병여단이 미확인 물체를 향해 대공포·기관총 발포 시작
  8. 1942-02-25 04:14
    산발적 발포 종료 — 약 1시간 동안 1,400발 이상 발사
  9. 1942-02-25 07:21
    '전원 해제(All clear)' 발령, 등화관제 해제
  10. 1942-02-26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탐조등이 교차하는 사진을 게재
  11. 1983
    미 공군역사실, '전쟁 신경증'과 기상관측 풍선 오인으로 결론

그날 밤 — 1,400발의 포격

2월 24일 저녁 7시 18분, 방위 산업 시설 근처에서 섬광과 점멸등이 보인다는 보고로 첫 경보가 내려졌다가 밤 10시 23분에 해제됐다. 그러나 25일 새벽 2시 무렵, 육군 레이더가 로스앤젤레스 서쪽 약 120마일(약 190km) 해상에서 미확인 접촉을 포착했다. 새벽 2시 25분 카운티 전역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고 등화관제가 시작됐다.

날이 밝은 뒤 육군 부대가 현장을 수색했지만 적기는 단 한 대도 발견되지 않았고, 격추 잔해나 폭탄 흔적도 없었다.

무엇이었나 — 공식 설명

사건 직후부터 정부 발표는 서로 어긋났다. 해군 장관 프랭크 녹스(Frank Knox)는 기자회견에서 이를 "오경보(false alarm)"이자 전쟁 신경증의 산물이라고 일축했다. 반면 전쟁부 장관 스팀슨은 처음에 "15대의 적기가 로스앤젤레스 상공에 나타났다"고 발표했다가 이후 이를 거둬들였다. 한 정부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다른 정부는 '15대가 있었다'고 말한 이 공식 입장의 모순이야말로, 이후 수십 년간 음모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됐다.

요약하면 공식 설명의 뼈대는 ⑴ 적기·폭격은 실재하지 않았고, ⑵ 풍선 등 무언가가 최초 발포의 방아쇠를 당겼으며, ⑶ 일단 시작된 발포가 패닉과 상상 속에서 스스로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핵심 의문 / UFO설

탐조등이 한 점에 모이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1942년 2월 26일자 사진은, 시간이 지나며 그 자체로 신화가 됐다. 사진 한가운데 밝은 형체가 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질문을 분리해야 한다. 첫째는 '오인·패닉'의 문제다 — 적기가 없었음은 사실상 확정적이며, 1,400발은 헛것을 향한 발포였다. 둘째는 '그래도 무언가는 있지 않았나'라는 미식별의 문제다. 회의론 진영에서도 "경험 많은 포병들이 느릿한 풍선 하나에 한 시간 동안 1,400발을 퍼부었다는 설명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반론이 있고, 무엇이(혹은 무엇이라도) 표적이었는지는 끝내 단정되지 않았다. UFO설은 바로 이 두 번째 빈자리를 파고든다. 다만 미식별이 곧 외계 비행체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가설

출처

이 사건은 '부분 해결'에 해당한다. 확인된 사실은 ⑴ 1942년 2월 24~25일 밤 로스앤젤레스에서 1,400발 이상의 대공포가 발사됐고, ⑵ 적기·폭격은 실재하지 않았으며 사상자·피해는 모두 아군 오인 발포와 패닉의 결과였고, ⑶ 1949년과 1983년의 공식 검토가 기상관측 풍선을 최초 발포의 방아쇠로 지목했다는 점이다. 끝내 풀리지 않은 한 조각은 '최초로 무엇을 보고 발포했는가'를 물증으로 확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며, 바로 그 빈자리가 UFO·은폐설에 닫히지 않는 틈을 내주었다.

  1. Battle of Los Angeles — Wikipedia
  2. World War II's Bizarre 'Battle of Los Angeles' — HISTORY
  3. The Mysterious Battle of Los Angeles, 1942 — Los Angeles Almanac
  4. The WWII Mystery Behind the 1942 Battle of Los Angeles — Milita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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