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두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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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미제사건

더 두들러

1974~197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주로 게이 남성을 노려 칼로 살해한 미상의 연쇄살인범. 바와 식당에서 피해자에게 그림을 그려 주며 접근했다는 정황에서 '두들러'라는 별칭이 붙었고, 생존자들이 동성애자임이 드러날까 증언을 꺼리면서 기소에 실패해 끝내 미해결로 남았다.

1974~1975년미국 샌프란시스코9분 분량

개요

이 문서는 실존 피해자, 그것도 당대 사회의 편견 아래 놓였던 성소수자들이 관련된 사건을 다룬다. 따라서 가해 행위의 자극적·구체적 묘사를 일절 배제하고, 확인된 사실에 한정한다. 초점은 범행의 잔혹함이 아니라, 왜 용의자를 특정하고도 끝내 법정에 세우지 못했는가라는 물음과, 그 실패의 배경에 깔린 시대적 편견에 둔다. 특정 개인을 범인으로 단정하지 않으며, 미특정된 사실은 추정·가설로 명확히 구분한다.

배경 —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

1970년대의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성소수자 운동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도시였다. 카스트로(Castro) 지구와 폴크 걸치(Polk Gulch) 일대에는 게이 바와 클럽, 식당이 모여들었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 1977년 하비 밀크(Harvey Milk)가 공직에 당선되며 가시적 정치력이 막 형성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바로 이 환경이 사건 수사의 결정적 변수가 된다. 피해자들이 만난 장소가 게이 바·식당이었고, 그 사실 자체가 증언을 가로막는 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두들러 사건이 단순한 연쇄살인 미제를 넘어 시대의 편견이 수사를 어떻게 무력화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임라인

  1. 1974-01-27
    제럴드 얼 캐버나(49)가 오션비치에서 숨진 채 발견 — 두들러와 연관된 첫 확인 피해자
  2. 1974-06-25
    조지프 '재' 스티븐스(27)가 골든게이트 공원 일대(스프레켈스 호수 부근)에서 발견
  3. 1974-07-07
    클라우스 아힘 크리스트만(31)이 오션비치에서 발견
  4. 1975-04-27
    워런 앤드루스(52)가 랜즈엔드에서 중상으로 발견 — 약 7주 뒤 사망 (후일 피해자로 거론)
  5. 1975-05-12
    프레더릭 엘머 케이핀(32)이 발견
  6. 1975-06-04
    해럴드 굴베리(66)가 링컨 공원에서 발견
  7. 1975
    SFPD, 생존자 진술을 토대로 첫 몽타주 공개
  8. 1976-01
    제보로 떠오른 한 인물을 경찰이 면담 — '유력 용의자'로 분류
  9. 2018
    SFPD 콜드케이스 부서, 사건 재수사 착수 (증거 재검토·유전자 계보 분석 검토)
  10. 2019-02
    현상금과 연령 보정 몽타주 갱신 — 현상금 약 10만 달러
  11. 2022
    현상금 증액(약 20만 달러), 일부 보도에서 여섯 번째 피해자 거론
  12. 2023-01
    갱신된 연령 보정 몽타주 공개, 현상금 25만 달러로 상향

수사와 침묵 — 왜 기소 못했나

수사가 결정적 국면에 접어든 것은 몽타주 공개 직후였다. 보도에 따르면, 1975년 몽타주가 나온 뒤 한 여성이 열흘 사이 두 차례에 걸쳐 경찰에 한 인물의 이름과 차량 번호를 제보했고, 적어도 두 명의 다른 제보자도 같은 이름을 댔다. 경찰은 1976년 1월 그 인물을 면담했고, 그를 '유력 용의자'로 분류했다.

이 대목에서 시대적 맥락이 사건의 향방을 갈랐다. 공직자였던 하비 밀크조차 생존자들의 침묵을 두고 "나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사회가 그들에게 가한 압박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해진다. 증언이 곧 커밍아웃을 의미했고, 그것이 직업·가정·사회적 지위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던 시대였기에, 생존자들의 선택을 단순히 비협조로 단정할 수는 없다.

재수사(2018~)

핵심 의문

이 두 의문은 모두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두들러 사건이 단지 '용의자를 못 잡은 미제'가 아니라 용의자를 지목하고도 시대가 그를 법정에 세우지 못한 미제라는 점이다.

현재 상태 / 출처

두들러 사건은 첫 피해자가 발견된 지 50년이 넘은 현재까지 미해결 상태다. SFPD는 콜드케이스로 사건을 계속 열어 두고 있으며, 갱신된 몽타주와 25만 달러 규모의 현상금, 그리고 유전자 계보 분석 같은 현대 기법을 통해 신원 확인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 증거였던 생존자 증언이 수십 년 전 확보되지 못했고, 시간의 경과로 다수의 관계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사건의 완전한 규명은 점점 더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이 사건이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것은 비단 미제라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피해자들이 누구였기에 정의가 지연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두들러에게 희생되거나 그 손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단지 게이였다는 이유로 죽음 이후에도, 또는 생존 이후에도 온전히 보호받지 못했다. 50년의 침묵 끝에 사건이 다시 공개된 데에는, 그 지연된 정의를 뒤늦게나마 회복하려는 의미도 담겨 있다.

  1. Doodler — Wikipedia (English)
  2. A Serial Killer Known As 'The Doodler' Is Likely Still At Large — A&E
  3. New 'Doodler' serial killer sketch released; San Francisco police seek help — CBS San Francisco
  4. 'The Doodler,' who killed SF gay men in the '70s, may be living in the East Bay — The San Francisco Standard
  5. San Francisco police increase reward for 1970s 'Doodler' serial killer — Fox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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