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결실종

플래넌 제도 등대지기 실종

1900년 12월, 스코틀랜드 외딴 섬 에일런 모어 등대의 등대지기 3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꺼진 등불과 거대한 폭풍의 흔적만 남긴 이 실종은, 한 편의 시가 더해지며 사실보다 더 유명한 전설이 되었다.

1900년 12월스코틀랜드 플래넌 제도 에일런 모어11분 분량

개요

대서양으로 내던져진 듯한 작은 바위섬, 안에서 잠긴 문, 며칠째 꺼져 있던 화로, 그리고 사람만 사라진 등대. 공식 조사는 거대한 너울이 선착장에 나가 있던 세 사람을 한꺼번에 휩쓸어 갔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시신도 목격자도 없는 실종은 곧 상상력의 무대가 되었다. 1912년 발표된 한 편의 시가 '뒤집힌 의자'와 '반쯤 먹다 만 식사', '세 개의 멈춘 시계' 같은 자극적 장면을 덧붙였고, 그 허구가 점차 사실로 둔갑하면서 이 사건은 사료와 시적 창작이 뒤엉킨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배경 — 바위섬의 등대와 세 사람

플래넌 제도는 아우터 헤브리디스의 루이스섬에서 서쪽으로 약 17~21마일(약 30km) 떨어진 무인 군도다. 그중 가장 큰 섬이 에일런 모어로, 가장 높은 곳이 해발 약 88m에 이르는 깎아지른 바위섬이다. 데이비드 A. 스티븐슨이 설계한 23m 높이의 등대는 1899년 12월 7일 처음 점등되었다. 건설 자재는 약 45m 높이의 절벽을 따라 보급선에서 직접 끌어올려야 할 만큼 접근이 험난했다.

이런 고립지의 등대는 보통 등대지기 네 명이 교대로 근무했다. 사건 당시 섬에 있던 세 사람은 주임 등대지기 제임스 듀캣, 제2보조 토머스 마셜, 그리고 병가 중이던 정규 대원 윌리엄 로스를 대신해 들어온 임시 등대지기 도널드 매카서였다. 네 번째 대원인 보조 등대지기 조지프 무어(Joseph Moore)는 마침 교대 휴가로 본토에 나가 있었고, 12월 26일 구호선에서 처음으로 섬에 내려 실종을 발견한 인물이 된다.

타임라인

  1. 1899-12-07
    에일런 모어 등대 첫 점등
  2. 1900-12-07
    구호선이 보급품을 내려놓음. 세 등대지기는 정상 근무 중
  3. 1900-12-13
    등대 일지의 마지막 정식 기록(이후 기록은 석판 메모로만 남음)
  4. 1900-12-15
    오전 9시 기상 관측을 끝으로 마지막 흔적. 이날 오후 실종으로 추정
  5. 1900-12-15 야간
    기선 아크터(Archtor)호가 등대 불이 꺼진 것을 목격, 입항 후 보고
  6. 1900-12-26
    악천후로 지연된 구호선 헤스페루스호가 정오에 도착. 무어가 텅 빈 등대 발견
  7. 1900-12-26
    선장 하비, '플래넌에 끔찍한 사고가 났다'는 전보를 본부에 타전
  8. 1901-01-08
    북부등대위원회 조사관 로버트 무어헤드, 거대 너울설을 결론으로 한 보고서 제출

발견된 정황 / 사실

원래 12월 20일경 예정이던 교대선 헤스페루스호는 거센 날씨로 출항이 거듭 미뤄졌다. 한편 12월 15일 밤, 라이스 항으로 향하던 대서양 횡단 기선 아크터(Archtor)호가 에일런 모어를 지나며 등대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것을 목격했고, 입항 후 며칠 뒤 그 사실을 등대위원회에 알렸다.

12월 26일 정오, 헤스페루스호가 마침내 섬에 닿았다. 선장 제임스 하비(James Harvie)는 섬에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고, 기적을 울리고 신호용 로켓을 쏘아 올려도 응답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보조 등대지기 조지프 무어가 가장 먼저 절벽을 올라 등대에 들어섰다.

가장 강력한 단서는 옷차림과 선착장의 상태였다. 무어의 보고에 따르면 듀캣은 장화와 방수복을, 마셜은 장화와 우의(oilskins)를 착용하고 나간 상태였고, 매카서는 평소 입던 외투를 등대 안에 그대로 둔 채 사라졌다.

이 파괴의 규모는 사건 직전 또는 당일 그 일대를 휩쓴 폭풍과 비정상적으로 높은 파도의 존재를 강하게 시사한다.

핵심 의문

이 사건의 핵심은 단순하면서도 풀리지 않는다. 숙련된 등대지기 세 사람이 어떻게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가. 등대 규정상 한 사람은 늘 등대를 지키도록 되어 있어, 세 명 전원이 동시에 위험한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일은 원칙적으로 없어야 했다. 그런데 매카서는 외투조차 걸치지 않은 채—다른 두 사람을 황급히 뒤따른 듯한 차림으로—사라졌다. 무언가가 평소의 규칙을 깨고 세 사람을 모두 밖으로 끌어냈고, 그들 중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

가설

출처의 신뢰도 — 사료와 허구의 경계

이 사건이 실제보다 더 미스터리하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후대의 창작이 사료처럼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요컨대 신뢰할 수 있는 1차 자료는 조지프 무어의 보고와 하비 선장의 전보, 그리고 1901년 1월 8일자 무어헤드 보고서다. 이 사료들은 거대 너울 사고라는 절제된 결론을 가리킨다. 반면 '뒤집힌 의자와 식은 식사'(깁슨의 1912년 시), '극적인 마지막 일지'(1929년·1965년 창작)는 모두 사건 이후 수년~수십 년 뒤에 더해진 허구다. 사건의 진짜 무게는 초자연이 아니라, 대서양 한가운데 바위섬에서 일상적 작업을 하다 변을 당한 노동자 세 사람의 평범하고도 가혹한 죽음에 있다.

현재 상태 / 남은 의문

물증과 정황은 비교적 명확하게 한 방향—폭풍 속 선착장에서의 사고—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사건이 영원한 미스터리로 회자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시신도 마지막 순간의 증언도 없어 '확정'이 불가능하다는 점. 둘째, 깁슨의 시와 후대의 날조가 만들어 낸 으스스한 이미지가 사료보다 강한 생명력을 얻었다는 점이다. 텅 빈 등대와 꺼진 불빛은 오늘날까지 소설·노래·다큐멘터리의 단골 소재로 남아 있으며, 사람들은 종종 시의 허구를 사실로 기억한다. 이 사건은 무엇이 일어났는가만큼이나 어떻게 전설이 만들어지는가를 보여 주는 기록이다.

출처

  1. Flannan Isles Lighthouse — Wikipedia
  2. Flannan Isles — Northern Lighthouse Board (공식 사료)
  3. Flannan Isles Lighthouse Keepers: The disappearance — National Records of Scotland
  4. The Keepers of Flannan Light — Skeptoid (회의주의 분석)
  5. The Flannan Isle mystery — Sky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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