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지 보든 하우스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폴리버의 한 가옥에서 사업가 앤드루 보든과 아내 애비가 도끼류 흉기에 살해됐다. 딸 리지 보든이 기소됐으나 1893년 무죄 평결을 받았고, 진범은 끝내 가려지지 않았다. 현재 그 집은 흉가 명소로 운영된다.
개요
이 글의 전제는 명확하다. 법적으로 리지 보든은 무죄다. 1893년 배심이 그렇게 판단했고, 한 세기가 넘도록 그 평결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이 기록은 누구를 범인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⑴ 법정에서 확인된 사실, ⑵ 정황에 기댄 추정, ⑶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구분하고, 그 미궁이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흉가'라는 전설로 이어졌는지를 따라간다.
배경 — 보든 가족
세컨드 스트리트의 보든 가옥에는 다섯 사람이 얽혀 있었다. 가장 앤드루 보든은 폴리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부동산·금융업자였으나, 재산에 비해 검소하다 못해 인색한 생활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집에는 실내 배관이나 전기조차 충분히 갖추지 않았다. 그의 두 번째 아내 애비는 앤드루의 첫 부인이 사망한 뒤 들어온 계모였고, 전처소생인 두 딸 리지(당시 32세)와 언니 에마(Emma)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전한다.
사건 당일 집에는 가족 외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아일랜드 출신 입주 가정부 브리짓 설리번(Bridget Sullivan, 25세)과, 전날 밤 찾아와 묵고 있던 외삼촌 존 빈니컴 모스(John Vinnicum Morse)다. 언니 에마는 그 무렵 집을 떠나 인근 마을에 가 있었다.
타임라인
- 1892-08-03외삼촌 존 모스가 보든 가에 도착해 묵음. 이날 밤 가족 일부가 복통을 호소했다는 기록이 있음
- 1892-08-04 오전 9시경외삼촌 모스가 외출(오전 8시 48분경), 앤드루도 오전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섬. 가정부 설리번은 실외에서 창문 청소
- 1892-08-04 오전 9시~10시 30분애비 보든이 2층 손님방을 정리하던 중 살해된 것으로 추정 — 검시상 사망 시각이 앤드루보다 앞섬
- 1892-08-04 오전 10시 30분경앤드루가 귀가해 1층 소파에서 휴식
- 1892-08-04 오전 11시경앤드루가 거실 소파에서 숨진 채 발견됨. 가정부 설리번이 비명을 듣고 달려옴
- 1892-08-08이웃 앨리스 러셀이, 리지가 부엌 화덕에서 드레스 한 벌을 태우는 것을 목격했다고 후일 증언
- 1892-08-11리지 보든 체포
- 1893-06-05 ~ 06-20뉴베드퍼드에서 재판 진행. 6월 20일 배심이 무죄 평결
- 1927-06-01리지 보든이 폴리버에서 폐렴으로 사망(향년 66세). 9일 뒤 언니 에마도 사망
재판과 무죄 평결
리지 보든은 체포 뒤 대배심 기소를 거쳐 1893년 6월 5일부터 20일까지 뉴베드퍼드에서 재판을 받았다. 결과는 무죄였다. 배심은 짧은 평의 끝에 만장일치로 무죄를 결정했다.
또 하나 자주 인용되는 정황은 앨리스 러셀의 증언이다. 그는 사건 며칠 뒤 리지가 부엌 화덕에서 드레스 한 벌을 태우는 것을 보았다고 했고, 리지는 페인트가 묻어 못 쓰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증언은 대배심 기소를 끌어내는 데 영향을 줬지만, 정작 본 재판에서는 결정적 무게를 갖지 못했다.
미제로 남다 — 용의선상
리지 보든의 무죄가 확정되자 사건은 누가 범인인가라는 질문을 미해결로 남겼다. 당시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은 여럿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끝내 기소되지 못했다.
후대의 작가와 연구자들은 가정 내 인물부터 가상의 사생아, 외부 침입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했으나, 어느 것도 법적·물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사건은 1893년 평결 이래 사실상 진전 없이 미궁에 머물러 있다.
흉가가 된 집 — 유령 전설
법적 결말이 미궁에 그치면서, 세컨드 스트리트의 집은 범죄사를 넘어 괴담의 무대가 됐다.
요컨대 이 집의 '유령'은 사건의 미해결성과 분리되지 않는다. 진범이 가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장소에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남겼고, 그 미궁이 흉가 전설의 토양이 됐다.
핵심 의문
이 사건의 의문은 세 갈래로 좁혀진다.
첫째, 누가 했는가. 무죄 평결로 리지 보든은 법적 책임에서 벗어났지만, 그렇다면 누가 백주에 집 안에서 두 사람을 살해했는가는 끝내 답을 얻지 못했다.
둘째, 왜 두 죽음 사이에 시간차가 있었나. 검시상 애비가 앤드루보다 먼저, 약 한 시간 이상 앞서 살해됐다는 점은 '외부 침입자가 잠깐 들어와 저질렀다'는 가정과 잘 맞지 않아, 오랫동안 논쟁의 핵이 됐다.
셋째, 왜 결정적 물증이 없었나. 도끼류 범행이라면 다량의 혈흔이 남기 마련인데, 범인의 의복이나 흉기에서 결정적 증거가 확보되지 못한 점이 수사와 재판 모두를 미궁으로 이끌었다.
현재 상태 / 출처
이 사건이 한 세기를 넘어 회자되는 까닭은, 답이 없기 때문이다. 풍부한 정황과 빈약한 물증, 그리고 '무죄지만 의문은 남은' 평결 사이의 간극이 끝없는 재해석을 불러왔다. 분명히 해 둘 것은 두 가지다. 법적으로 리지 보든은 무죄이며, 그 누구도 범인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오늘날 세컨드 스트리트의 그 집은 사건 현장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흉가 명소로 운영되지만, 그곳을 감도는 '유령'의 정체는 초자연적 존재라기보다 130여 년째 닫히지 않은 한 미제 사건의 그림자에 가깝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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