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어노크 잃어버린 식민지
1587년 잉글랜드가 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세운 식민지의 정착민 약 115명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총독 존 화이트가 보급차 본국에 다녀온 3년 사이, 정착지는 질서 있게 해체되었고 기둥에는 "CROATOAN"이 새겨져 있었다. 조난을 뜻하는 십자가 표시는 없었다.
개요
폭력의 흔적도, 시신도 없었다. 무엇이 한 마을 전체를 흔적 없이 옮겨놓았는가. 정착민들은 스스로 떠난 것인가, 끌려간 것인가. 화이트는 새겨진 글자를 단서 삼아 약 80km 떨어진 크로아토안섬을 향했으나 폭풍에 가로막혀 닿지 못했고, 다시는 식민지를 찾지 못했다. "잃어버린 식민지(Lost Colony)"라 불리는 이 사건은 400년 넘게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배경 — 엘리자베스 시대의 식민 실험
로어노크 식민은 1587년에 갑자기 시작된 일이 아니라, 잉글랜드가 신대륙에 거점을 마련하려던 일련의 시도 중 세 번째였다. 후원자는 엘리자베스 1세의 총신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으로, 1584년 여왕에게서 북아메리카 미점령지를 점유할 특허장을 받았다. 롤리 자신은 항해하지 않았다.
1584년 정찰대(필립 아마다스·아서 발로)가 로어노크섬 일대를 둘러본 뒤, 1585년 랠프 레인(Ralph Lane)이 이끄는 군사 성격의 1차 식민지가 세워졌다. 그러나 식량 부족과 원주민과의 충돌로 이듬해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 함대를 만나 철수했다.
1587년의 3차 식민은 성격이 달랐다. 군인이 아니라 가족 단위 정착민이었고, 남성·여성·어린이가 함께였다. 총독은 화가이자 지도제작자인 존 화이트였으며, 그의 딸 엘리너 데어(Eleanor White Dare)와 사위 아나니아스 데어(Ananias Dare)도 동행했다. 통역·중개자로는 우호적인 크로아토안족 출신 만테오(Manteo)가, 한때 동행했다 적대로 돌아선 로어노크족 완체스(Wanchese)가 있었다. 원래 목적지는 더 북쪽의 체서피크 만(Chesapeake Bay)이었으나, 항해사 시몬 페르난데스(Simon Fernandes)가 로어노크에 정착민을 내려놓고 북상을 거부하면서 계획이 어그러졌다.
타임라인
- 1584월터 롤리, 엘리자베스 1세에게서 북아메리카 점유 특허장 수여. 아마다스·발로 정찰대 파견
- 1585랠프 레인의 1차(군사) 식민지 설립
- 1586식량 부족과 충돌로 드레이크 함대를 따라 철수
- 1587-07-22화이트의 약 115명 식민대, 로어노크섬 부근 도착
- 1587-08-18버지니아 데어 출생 —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최초의 잉글랜드 아이
- 1587-08-27화이트, 보급·증원을 구하러 잉글랜드로 출항
- 1588스페인 무적함대 위협으로 선박 징발·출항 금지. 소형선 2척(Brave·Roe) 구조 시도가 프랑스 사략선 공격으로 실패
- 1590-08-18화이트 귀환 — 버지니아 데어 세 번째 생일. 정착지 무인, 집 해체, 'CROATOAN' 각인 발견. 십자가 표시 없음
- 1590-10-24경폭풍으로 크로아토안섬 수색 실패, 화이트 잉글랜드 귀환
- 1593존 화이트 사망. 가족·식민대와 재회하지 못함
화이트는 왜 3년이나 늦었나
화이트의 귀환 지연은 개인적 태만이 아니라 국가 비상사태의 결과였다. 그는 1587년 8월 보급을 구하러 떠나 11월 잉글랜드에 닿았으나, 곧 잉글랜드–스페인 전쟁(Anglo-Spanish War)과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Spanish Armada) 위협이 모든 항해를 막았다.
롤리는 방위에 차출되지 않은 소형선 2척 Brave호·Roe호로 1588년 4월 소규모 구조대를 보냈으나, 아조레스 부근에서 프랑스 사략선의 공격을 받아 보급품을 약탈당하고 화이트도 부상한 채 회항했다. 1588년 8월 무적함대가 격퇴된 뒤에도 여왕은 반격에 쓸 선박을 가늠하느라 출항 금지를 유지했고, 화이트는 1590년에야 사략선들과 함께 로어노크로 향할 수 있었다.
현장 — 화이트가 본 것
1590년 8월 18일, 공교롭게도 손녀 버지니아 데어의 세 번째 생일에 화이트는 로어노크에 닿았다. 그가 본 것은 학살의 현장이 아니라 질서 있게 비워진 마을이었다.
화이트 본인의 1590년 항해기는 이 장면을 직접 전한다. 그는 떠나기 전 정착민들과 비밀 표식(secret token)을 약속해 두었다 — 어디로든 이주하면 그 장소의 이름을 나무나 문기둥에 반드시 새길 것, 그리고 만약 곤경에 처해 강제로(in distresse) 떠난다면 그 이름 위에 십자가(✠)를 함께 새길 것.
"...5. foote from the ground in fayre Capitall letters was graven CROATOAN without any crosse or signe of distresse." (땅에서 5피트 높이에 아름다운 대문자로 CROATOAN이 새겨져 있었으나, 조난을 뜻하는 십자가나 어떤 표시도 없었다.)
십자가가 없다는 것 —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화이트는 정착민들이 위난에 쫓긴 것이 아니라, 약속대로 행선지를 남기고 질서 있게 이주했다고 해석했다. 그 행선지는 만테오의 부족이 사는 우호적인 크로아토안섬(Croatoan Island, 현 해터러스섬), 로어노크에서 남쪽으로 약 50마일이었다.
그러나 화이트는 끝내 크로아토안섬에 닿지 못했다. 허리케인급 폭풍으로 닻줄이 끊기고 난파 위험이 커지자 선박들은 뱃머리를 돌렸고, 화이트는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그는 가족도, 식민대도 다시 보지 못했다.
핵심 의문
확정된 사실은 역설적으로 단순하다. 시신도, 싸움의 흔적도, 조난 신호도 없이 한 마을 전체가 사라졌고, 떠나기 전 집을 헐고 방책을 세울 시간이 있었으며, 행선지로 읽히는 단어 하나를 남겼다는 것.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로, 왜 갔으며, 그 뒤 어떻게 되었는가. 화이트가 폭풍에 막혀 크로아토안에 닿지 못한 그 한 번의 실패가, 답을 영원히 멀어지게 했다.
가설
통설 정정 — 떠도는 이야기들
현재 상태와 남은 의문
로어노크 잃어버린 식민지는 여전히 미해결이다. 그러나 무작정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아니다. 화이트가 본 정황—질서 있게 헐린 집, 행선지를 가리키는 "CROATOAN" 각인, 조난 십자가의 부재—은 한 방향을 가리킨다. 정착민들이 자발적으로, 우호적인 크로아토안족(현 해터러스섬) 사이로 이주해 동화되었다는 가설이 오늘날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진다. 여기에 800년 만의 대가뭄이라는 환경 압박과 100여 명을 한 마을이 부양하기 어려웠다는 사정이, 일부는 크로아토안으로 일부는 내륙으로 갈라졌으리라는 '집단 분리' 그림을 보탠다.
다만 다음 의문들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 해터러스·새먼 크릭의 16세기 유물이 정착의 증거인가, 단순 교역의 흔적인가
- 분리되었다면 각 집단이 정확히 어디로 갔고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 화이트의 궤짝을 누가, 왜 파헤쳤는가
가장 정직한 결론은 First Colony Foundation 스스로가 인정한 그대로다 — 아직 '결정적 증거(smoking gun)'는 없다. 동화·이주설이 가장 그럴듯하지만, 사건은 여전히 정황으로만 짐작될 뿐 입증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출처
- Roanoke Colony — Wikipedia
- The fift voyage of Master John White into ... Virginia, in the yeere 1590 (존 화이트 1590년 항해기 1차 사료) — Encyclopedia Virginia
- 1587: The Lost Colony — National Park Service (Fort Raleigh)
- Major Theories of the Lost Colony — National Park Service (Fort Raleigh)
- The First Colony Foundation: In Search of Elizabethan America
- Hidden Images Revealed in Elizabethan Map of America — First Colony Foundation
- The Lost Colony and Jamestown Droughts (Stahle et al., Science 1998, DOI:10.1126/science.280.5363.564)
- The Mystery of Roanoke Endures Yet Another Cruel Twist (Andrew Lawler) — Smithsonian Magazine
- Lost Colony of Roanoke may have assimilated into Indigenous society — Live Science
- Is This Inscribed Stone a Notorious Forgery—or the Answer to America's Oldest Mystery? (Dare Stones) — National Geo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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