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9군단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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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실종

로마 제9군단 실종

5천 명 규모의 로마 정예 군단 '제9 히스파나'가 서기 2세기 초 어느 순간 현존 기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중 전설은 브리튼 북부에서 전멸했다고 말하지만, 학계 다수설은 전혀 다른 결말을 가리킨다.

서기 120년경로마 브리타니아 (논쟁)10분 분량

개요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는 분명하다. 굶주리고 사기가 꺾인 군단이 안개 낀 칼레도니아(스코틀랜드)의 숲으로 행군해 들어갔다가 야만족의 봉기에 휩쓸려 독수리 군기와 함께 통째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극적 전설은 대부분 20세기 소설에서 비롯된 허구이며, 오늘날 역사학계의 다수설은 전혀 다른 결말을 제시한다. 군단은 브리튼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브리튼을 떠났고, 그 뒤 다른 어딘가에서—아마도 제국 동방에서—소멸했다는 것이다.

배경 — 제9 히스파나와 브리타니아

제9군단의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에서 갈리아 전쟁(기원전 58~51년)에 참전했고 파르살루스 전투(기원전 48년)에서 싸운 군단까지 연원이 닿는다. 이후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편에 서서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에 참가했다.

이 군단이 역사의 무대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브리타니아에서다. 서기 43년 클라우디우스의 침공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한 세기 가까이 브리튼 정복과 진압의 최전선을 담당했다. 서기 61년 부디카(Boudica)의 대반란 때는 카물로두눔(콜체스터) 부근에서 심각한 패배를 당해 보병 상당수를 잃었다. 71년경에는 브리타니아 북부의 거점 도시 에보라쿰(Eboracum, 오늘날의 요크)에 군단 요새를 건설하고 그곳을 본거지로 삼았다. 82~83년에는 아그리콜라의 칼레도니아 원정에도 참여했다.

타임라인

  1. 기원전 58~48년
    카이사르 휘하 갈리아 전쟁·파르살루스 전투 참전(군단 연원)
  2. 서기 43년
    클라우디우스의 브리타니아 침공에 참여(추정)
  3. 서기 61년
    부디카 반란 진압 중 카물로두눔 부근에서 큰 패배
  4. 서기 71년경
    에보라쿰(요크)에 군단 요새 건설, 본거지 삼음
  5. 서기 108년
    요크 성문을 석조로 재건했다는 명문 — 브리튼 내 마지막 확실한 기록
  6. 서기 104~120년
    네덜란드 네이메헌의 기와 각인·유물 — 라인강 주둔 정황
  7. 서기 122년경
    하드리아누스 브리튼 방문, 하드리아누스 방벽 착공
  8. 서기 142년경
    전직 제9군단 천부장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카루스가 아라비아 총독으로 재임(군단 존속 정황)
  9. 서기 132~135년
    (가설) 바르 코크바 반란 — 군단의 동방 소멸 후보 시기
  10. 서기 197년 이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 군단 목록에서 제9군단 누락 — 이전에 소멸
  11. 1954년
    로즈메리 서트클리프 소설 〈제9군단의 독수리〉 출간 — 브리튼 전멸설 대중화

기록으로 남은 사실

여기까지가 '브리튼에서 사라졌다'는 인상을 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반전은 브리튼이 아니라 대륙에서 나왔다.

핵심 의문

이렇게 정리하면 미스터리의 윤곽이 분명해진다. 제9군단은 서기 108년 무렵 요크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 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서기 197년 이전)의 군단 목록에 이름이 빠지기 전 어느 시점에 소멸했다. 그 사이 약 한 세기 가까운 공백 동안, 군단은 라인강 변(네이메헌)에 모습을 비쳤고, 그 장교는 140년대까지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렇다면 정작 군단 자체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라졌는가? 이것이 모든 논쟁의 핵심이다.

문제는 로마군 기록의 특성에 있다. 군단이 영광스럽게 해체되거나 다른 부대에 흡수되는 경우, 굳이 그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일이 흔했다. 또 동시대 사료(타키투스 이후의 2세기 브리타니아·동방 기록)는 결정적인 대목에서 끊겨 있거나 소실됐다. 그래서 같은 침묵을 두고 학자마다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다.

가설

현재 상태 / 남은 의문

학술적으로 보면 상황은 정반대에 가깝다. 네이메헌 유물과 장교 경력 기록은 군단이 108년 이후에도 한동안 존속했음을 강하게 시사하며, 다수 학자는 브리튼 전멸설을 거의 폐기했다. 다만 군단을 동방의 특정 반란이나 전쟁에서 소멸시킬 만한 결정적 증거 역시 없기 때문에, '브리튼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사라졌다'는 큰 방향만 합의됐을 뿐, 정확한 시점과 장소는 여전히 미상으로 남아 있다.

요컨대 제9군단의 미스터리는 '어떻게 5천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가'라기보다, '어느 침묵을 진짜 종말로 읽을 것인가'의 문제다. 가장 극적인 답(칼레도니아 전멸)은 가장 약한 근거 위에 서 있고, 가장 유력한 답(동방 소멸)은 가장 결정적인 증거를 결여하고 있다. 로마 제국이 가장 강성하던 시기에 한 정예 군단이 남긴 이 거대한 공백은, 사료의 한계와 대중적 상상력이 어떻게 역사를 빚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출처

  1. Legio IX Hispana — Wikipedia
  2. Legio IX Hispana — World History Encyclopedia
  3. Legio IX Hispana — The Lost Roman Legion — HeritageDaily
  4. Was the Ninth Legion Destroyed in Britain? — History Hit
  5. The Eagle of the Ninth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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