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 포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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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실종

퍼시 포셋

영국 탐험가 퍼시 포셋이 1925년 아마존 정글에서 'Z'라 부른 잃어버린 도시를 찾다가 아들·동료와 함께 사라졌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의 운명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근 고고학은 그가 완전히 틀리진 않았음을 보여준다.

1925년브라질 마투그로수 (아마존)11분 분량

개요

포셋의 실종은 20세기 탐험사에서 가장 끈질긴 미스터리 중 하나다. 한 명의 노련한 탐험가가 정글 속으로 사라진 사건이, 이후 수많은 수색대를 같은 정글로 끌어들였고 그중 일부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100년 뒤, 그가 좇던 '잃어버린 도시'가 어쩌면 완전한 환상은 아니었음을 시사하는 고고학적 발견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뜻밖의 반전을 맞는다.

배경 — 탐험가 포셋과 '도시 Z'

퍼시 포셋은 1867년 잉글랜드 토키에서 태어났다. 영국 육군 포병 장교 출신으로 왕립지리학회의 훈련을 받은 측량가였던 그는, 1906년부터 1924년 사이 볼리비아·브라질 국경 측량을 비롯해 아마존 분지를 일곱 차례 탐험했다.

당시 주류 학계는 아마존 같은 열대우림이 척박한 토양 탓에 대규모 정주 문명을 부양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포셋의 '도시 Z' 가설은 한 측량가의 비주류적 집착으로 취급됐고, 학회의 정식 후원은 쉽게 따라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신문사·후원자들과 계약을 맺어 자금을 모으고, 측량으로 다져진 정글 경험을 무기로 끝내 마지막 원정을 감행했다.

포셋은 이전 원정에서 길잡이·짐꾼을 대규모로 거느렸던 방식과 달리, 마지막 원정에서는 세 명의 소규모 정예로 정글에 들어가는 전략을 택했다. 적은 인원이 더 빠르고 눈에 덜 띄게 움직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동행한 잭과 롤리는 모두 정글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였고, 이 선택은 훗날 아사·탈진 가설의 한 배경으로 거론된다.

타임라인

  1. 1867-08-18
    퍼시 해리슨 포셋, 잉글랜드 토키에서 출생
  2. 1906~1924
    아마존 분지를 일곱 차례 탐험, 측량가로 명성
  3. 1914
    문헌 연구를 토대로 잃어버린 도시 'Z' 가설 정립
  4. 1925-04-20
    쿠이아바 출발 — 아들 잭, 친구 롤리 동행
  5. 1925-05-29
    '데드 호스 캠프'에서 마지막 편지 발송, 좌표 약 11°43′S 54°35′W
  6. 1927~
    여러 수색·구조 원정 시작, 일부도 비극으로 끝남
  7. 1933
    포셋의 측각기(나침반)가 발견되나 출발 전 두고 간 것으로 확인
  8. 1951
    유골이 포셋의 것이라 주장됐으나 이후 불일치로 판명
  9. 1979
    포셋의 인장 반지가 전당포에서 발견
  10. 2009
    데이비드 그랜의 책 'The Lost City of Z' 출간
  11. 2016
    동명 영화(제임스 그레이 감독) 개봉

마지막 원정과 실종

'데드 호스 캠프'라는 지명은 포셋이 앞선 1920년 원정에서 말이 죽었던 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가 이미 한 번 지나간 익숙한 경로였다. 마지막 편지에서 그는 보급선과 떨어져 정글 깊숙이 들어갈 것이며 이듬해까지 문명에서 사라지겠다고 적었다. 즉 일정 기간의 '소식 두절'은 처음부터 계획의 일부였고, 이 점이 가족과 후원자들이 한동안 실종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든 요인이 됐다.

포셋은 이전부터 자신을 찾으러 오지 말라고 못 박아 두었다. 구조대가 들어오면 그들마저 위험에 빠지고, 'Z'의 위치가 노출된다는 이유였다. 이 경고가 초기 수색을 늦췄고, 실종의 진상을 더욱 깊은 안개 속에 가두었다. 실제로 본격적인 구조 원정이 조직된 것은 마지막 편지로부터 2년 가까이 지난 뒤였다.

세 사람의 운명을 가늠하게 하는 물증은 단편적이다. 이후 여러 해에 걸쳐 포셋의 인장 반지(1979년 전당포에서 발견)와 측각기(1933년 발견) 같은 소지품이 나타났지만, 측각기는 출발 전에 두고 간 것으로 확인됐고 반지 역시 결정적 단서가 되지 못했다. 1951년에는 한 무리의 유골이 포셋의 것이라 주장됐으나, 검사 결과 그의 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이렇게 물증이 등장할 때마다 사건은 잠시 주목받았다가 다시 미궁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떤 소지품도 세 사람이 죽은 장소나 시점을 특정하지 못했고, 누가 그것을 어떤 경로로 손에 넣었는지도 대개 불분명했다. 결국 단편적 물증들은 '포셋이 데드 호스 캠프 이후 정글로 더 들어갔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확정해 주지 못했다.

수색의 비극

포셋이 돌아오지 않자, 1927년부터 그를 찾으려는 원정이 잇따랐다. 그중에는 훗날 작가가 된 피터 플레밍(Peter Fleming)이 이끈 원정도 있었다.

요컨대 '100명 사망'은 검증된 통계라기보다 전설화된 숫자에 가깝다. 그러나 포셋 실종 이후 그 지역을 향한 탐험이 거듭 실패하고 사상자를 냈다는 큰 그림은, 사건의 음울한 분위기를 실제로 키워 온 사실이다. 정글의 더위와 질병, 적대적 환경, 그리고 '포셋의 비밀'을 풀겠다는 집착이 결합하면서, 마투그로수는 한 사람의 실종을 넘어 '돌아오지 못하는 땅'이라는 상징으로 굳어졌다.

수색의 어려움은 단순한 거리나 지형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포셋이 좌표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남겼고, 'Z'의 위치를 누구에게도 명확히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수색대는 광대한 정글에서 정확한 목표 지점조차 특정하기 어려웠다. 단서가 될 만한 소지품들도 한참 뒤에야, 그것도 단편적으로 나타났다. 이 정보의 공백이 온갖 풍문과 가짜 목격담을 낳았고, 사건을 더욱 풀기 어려운 미궁으로 몰아넣었다.

핵심 의문

포셋 사건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세 사람은 정확히 어떻게 죽거나 사라졌는가. 살해됐는가, 굶주림과 질병으로 쓰러졌는가, 아니면 정글 속 어딘가에 머물렀는가. 둘째, 그가 좇던 'Z'는 한낱 환상이었는가, 아니면 실재했는가. 100년 동안 첫 번째 의문은 닫히지 않았지만, 두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최근 고고학이 놀라운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가설

현재 상태 — 고고학의 반전

연구에 따르면 이 정주지들은 약 1,500년 전부터 약 400년 전까지 번성했고, 일부 광장은 지름이 150m에 달했다. 쿠히쿠구를 포함한 복합체는 약 20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한때 수만 명(추정 5만 명 안팎)이 거주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헤켄버거의 연구는 단발성 발견이 아니라 30여 년에 걸친 발굴과 현지 부족과의 협업을 통해 축적된 것이다. 그는 쿠이쿠로 부족을 이 고대 도시 건설자들의 후예로 보고, 위성·라이다(LiDAR) 분석과 지상 발굴을 결합해 정글에 가려진 도로망과 광장, 해자의 윤곽을 복원했다. 이러한 작업은 아마존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이 아니라, 오래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가꾼 인공적 경관(anthropogenic landscape)이었음을 보여 준다.

퍼시 포셋과 두 동행자의 실종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미해결로 남아 있다. 그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가 환상이라 조롱받던 잃어버린 도시는 정글 아래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라진 탐험가의 가장 큰 오류로 여겨지던 집착이, 사후 가장 흥미로운 변호를 얻은 셈이다. 그의 마지막 발걸음이 닿은 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가 옳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만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출처

  1. Percy Fawcett — Wikipedia
  2. The man who died searching for the Lost City of Z — National Geographic
  3. Kuhikugu — Wikipedia
  4. The Lost City of Z (book) — Wikipedia
  5. Lost Garden Cities: Pre-Columbian Life in the Amazon — Scientific American
  6. The Amazon's archaeology of hope: Q&A with Michael Heckenberger — Mong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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