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앰브로즈 비어스 실종
1913년 말, '악마의 사전'을 쓴 71세의 미국 풍자가 앰브로즈 비어스가 멕시코 혁명의 전장으로 떠났다. '나는 미지로 간다'는 마지막 편지를 끝으로 그는 흔적 없이 사라졌고, 한 세기가 지나도록 시신도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개요
비어스의 실종은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라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죽음과 부조리를 평생 글의 소재로 삼았던 노작가가 전쟁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자취를 지운 듯한 마지막은, 그가 쓴 어떤 단편보다도 음울한 미스터리로 남았다. 더욱이 그가 사라진 무대가 기록이 흩어지고 전선이 매일 뒤바뀌던 혁명기 멕시코 북부였기에, 사망 여부조차 끝내 공식적으로 확정되지 못했다. 한 인물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렇게 많은 결말이 동등하게 경합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배경 — 비어스라는 인물
비어스는 1842년 6월 24일 미국 오하이오주 마이그스 카운티에서 13남매 중 열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농가 출신이었으나 독서로 스스로를 단련했고, 남북전쟁이 터지자 1861년 북군 제9인디애나 보병연대에 입대했다. 샤일로·치카모가·케네소산 등 전쟁에서 가장 참혹했던 격전을 일선에서 겪었고, 1864년 케네소산 전투에서는 머리에 총상을 입어 평생 후유증을 안았다. 그는 위관급 장교로 종전을 맞았다. 전쟁이 남긴 죽음의 풍경—진창에 쌓인 시신, 무의미한 명령, 우연이 가르는 생사—은 이후 그의 글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전후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언론인으로 이름을 얻었다. 『더 와스프』의 칼럼 '프래틀(Prattle)'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등에서 정치인과 위선을 가차 없이 난도질하는 글로 명성과 적을 동시에 쌓았다. 풍자가로서의 정점을 보여준 것은 일상의 단어를 냉소적으로 비틀어 정의한 『악마의 사전(The Devil's Dictionary)』이었다—이를테면 그는 '평화(peace)'를 "두 차례의 전쟁 사이, 싸움이라는 국가적 사업이 잠시 멈춘 기간"으로 정의했다. 그의 별명은 "비터 비어스(Bitter Bierce)", 곧 '쓰디쓴 비어스'였다. 동시대 평자들은 그를 미국이 배출한 가장 신랄한 풍자가 중 하나로 꼽았다.
말년의 비어스는 명성과는 별개로 사적으로 깊은 상실을 겪고 있었다. 두 아들이 모두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한 명은 치정 사건으로 총에 맞아, 다른 한 명은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다—오랜 별거 끝에 전처와도 사별했다. 천식 등 만성 질환도 그를 괴롭혔다. 이런 정황은 멕시코행의 동기를 둘러싼 후대의 해석에서 자주 인용된다.
타임라인
- 1842-06-24오하이오주 마이그스 카운티에서 출생
- 1861~1866남북전쟁 북군 복무 — 샤일로·치카모가·케네소산 등 참전
- 1906풍자집 『악마의 사전』의 토대가 된 글들이 책으로 묶임
- 1913-1071세의 비어스, 워싱턴 D.C.를 떠나 남부 옛 전장을 순례
- 1913-11엘패소에서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진입, 비야군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짐
- 1913-12비야군과 함께 티에라블랑카 전투 등을 목격했다고 알려짐
- 1913-12-26치와와에서 마지막 편지 — '나는 미지로 간다'
- 1914-01치와와에서의 목격이 마지막 보고로 전해짐(미확인)
- 1914 이후미 영사·군 당국 조사에도 행적·시신 미확인, 실종 확정
멕시코로 — 마지막 편지
출발 자체가 이미 일종의 작별이었다. 비어스는 워싱턴을 떠나기 전 자신의 원고와 서류를 정리했고, 옛 남북전쟁 전장을 차례로 순례했다. 그가 향한 멕시코는 1910년부터 이어진 혁명으로 비야·카란사·우에르타 세력이 뒤엉켜 격렬히 싸우던 무법지대였다. 71세의 외국인이 단신으로 들어가기에는 더없이 위험한 곳이었으나, 비어스는 오히려 그 위험을 담담히, 때로는 반기는 투로 말했다.
가장 확실하게 남은 마지막 흔적은 한 통의 편지다. 1913년 12월 26일, 비어스는 치와와에서 친구 블랜치 파팅턴(Blanche Partington)에게 편지를 보내며 이렇게 끝맺었다.
조카 로라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는 죽음을 농담처럼 예언했다. "내가 멕시코의 돌담에 세워져 총에 맞아 너덜너덜해졌다는 소식을 듣거든, 나는 그것이 삶을 떠나는 꽤 괜찮은 방법이라 여겼음을 알아다오."
핵심 의문
비어스 사건의 핵심은 단순하다. 그가 정말 멕시코의 전장에서 죽었는가,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가. 더 근본적으로는 그가 과연 멕시코 깊숙이까지 들어가기는 했는가다.
문제는 그 시대·그 장소의 특수성이다. 혁명기 멕시코 북부는 전선이 수시로 뒤바뀌고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무법지대였으며, 비어스는 71세의 외국인 단독 여행자였다. 사망했다 해도 신원이 확인될 가능성은 낮았고, 의도적으로 종적을 감추기에도 더없이 좋은 무대였다. 그래서 그의 실종은 '풀 수 없는 사건'인 동시에, 수많은 이야기가 덧붙기 좋은 빈 공간이 되었다.
특히 풀리지 않는 대목은 비어스가 비야군과 실제로 얼마나 깊이 동행했는가다. 그가 비야군과 함께 이동했다는 전언은 널리 퍼졌지만, 비야의 진영에는 여러 나라의 종군기자가 상주했음에도 비어스를 직접 보았다고 증언한 기자가 사실상 없다. 마지막 편지가 부쳐진 치와와 이후의 동선은 전적으로 후대의 추정과 단편적 전언에 의존한다. 출발점은 분명하나 도착점이 통째로 비어 있는 셈이다.
가설
판초 비야가 직접 명령해 비어스를 처형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퍼졌으나, 비야 본인은 비어스를 만난 적조차 없다고 부인했다. 한 자료는 "1913년 말 비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였고, 곁의 수많은 기자단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저명한 미국 언론인을 처형한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상태
한 세기가 넘도록 연구자와 호사가들은 멕시코 북부의 사막 마을과 텍사스 국경 마을, 그리고 그랜드캐니언까지 비어스의 마지막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시에라모하다의 묘비는 추정 위에 세워졌고, 마파에서 발굴된 편지는 별명의 유사성에 기대고 있을 뿐이며, 자살설은 유해 한 점 제시하지 못했다. 사망 연도가 확정되지 않은 탓에 그의 생몰 표기는 지금도 "1842~?"로 남는다. 실종 직후 일었던 추측들—전사·처형·병사·자작 실종—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무게가 거의 그대로다. 새 증거가 결정적으로 한쪽 결말을 닫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미지로 간다"는 그의 마지막 문장은, 의도했든 아니든 자신의 결말을 정확히 예언한 문장이 되었다. 평생 죽음을 가장 냉정하게 정의하고 조롱했던 풍자가는, 정작 자신의 죽음만큼은 어떤 사전에도 등재되지 못한 채 미지의 항목으로 남아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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