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멜리아 에어하트 실종
1937년 세계일주 비행에 도전하던 전설적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태평양 상공에서 사라졌다. 연료가 떨어져 가던 마지막 교신을 끝으로, 그녀와 비행기는 80년이 넘도록 발견되지 않았다.
개요
에어하트는 대서양을 단독 횡단한 최초의 여성으로 이미 세계적 영웅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장 발전된 장비를 갖추고도 망망대해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은, 80년이 넘도록 가장 끈질긴 실종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았다.
배경 — 마지막 구간
세계일주 비행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약 2만 9천 마일의 여정 중 마지막 난관이 라에에서 하울랜드섬까지의 약 4,100km였다. 하울랜드는 길이 2km, 높이 3m 남짓의 극히 작은 섬으로, 망망대해에서 이곳을 정확히 찾는 것이 항법의 핵심이었다. 미 해안경비대 경비함 이타스카(Itasca)가 섬 옆에서 무선 방위 신호와 연돌 연기로 길잡이 역할을 맡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통신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비행기와 이타스카는 서로의 신호를 제대로 잡지 못했고, 방위탐지(RDF) 장비는 에어하트의 주파수에 동조하지 못했다.
타임라인
- 1937-07-02 10:00뉴기니 라에 이륙, 하울랜드섬 향발(현지시각)
- 1937-07-02 06:14에어하트, 약 200마일 거리 보고·방위 요청(이타스카 시각)
- 1937-07-02 07:42'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섬이 보이지 않는다' 교신
- 1937-07-02 07:58마지막 명료 교신 — 'we are on the line 157 337'
- 1937-07-02~미 해군·해안경비대의 대규모 수색 시작
- 1937-07-19공식 수색 종료 — 잔해·흔적 미발견
- 1939-01-05에어하트, 법적으로 사망 선고
- 2018Jantz, 니쿠마로로 유골이 에어하트와 '부합'한다는 분석 발표
- 2024Deep Sea Vision, 니쿠마로로 인근서 '비행기 형태' 음파 영상 보고(미확인)
마지막 교신 — 사라진 선
이 "157-337 선"은 모든 가설의 출발점이 됐다. 만약 그녀가 섬을 지나친 채 이 선을 따라 남동쪽으로 더 날았다면, 도달할 수 있는 다른 육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라진 뒤의 신호
실종 직후 며칠간, 여러 곳에서 에어하트의 것으로 의심되는 조난 무선 신호가 잡혔다는 보고가 잇따랐다. 일부는 명백한 오인이나 장난으로 배제됐지만, 일부는 주파수와 시간대가 그럴듯해 지금까지 논쟁거리다.
가설
핵심 의문
에어하트 사건의 핵심은 그녀가 마지막 순간 어디에 있었는가다. 섬을 코앞에 두고 바다에 떨어졌는가, 아니면 위치선을 따라 더 날아가 다른 섬에 닿았는가. 같은 마지막 교신이 두 갈래의 전혀 다른 결말을 가리키고, 어느 쪽도 결정적 증거로 닫히지 않았다.
80년의 수색
에어하트가 사라지자 미국은 당시 역사상 가장 크고 비용이 많이 든 항공·해상 수색을 벌였다. 항공모함 렉싱턴과 전함 콜로라도를 포함한 함대가 약 25만 제곱마일의 바다를 훑었지만, 잔해도 흔적도 찾지 못했다. 공식 수색은 7월 19일 종료됐다.
2024년에는 해저탐사기업 Deep Sea Vision이 니쿠마로로 인근에서 '비행기 형태'의 음파 영상('타라이아 물체')을 공개해 화제가 됐으나, 이후 추가 조사에서 자연 지형일 가능성이 제기되며 확정되지 않았다. 새로운 단서가 등장할 때마다 기대가 모이고, 결정적 증거의 부재로 다시 가라앉는 일이 80여 년째 반복되고 있다.
현재 상태
80여 년간 여러 탐사대가 태평양의 바닥과 외딴 산호섬을 뒤졌고, 2024년의 음파 영상처럼 새로운 단서가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결정적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가장 유능했던 비행사가 가장 작은 섬을 끝내 찾지 못했다는 역설은, 인류가 하늘을 정복해 가던 시대의 가장 큰 빈칸으로 남아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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