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결미제사건

메리 셀레스트호

1872년 11월 뉴욕을 떠나 제노바로 향하던 미국 브리간틴 메리 셀레스트호가, 한 달 뒤 대서양에서 승무원 10명 전원이 사라진 채 멀쩡히 표류하는 상태로 발견됐다. 화물도 식량도 그대로였고 구명정 한 척만 사라졌다. 150년이 지나도록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1872년 11~12월대서양, 아조레스 제도(Azores) 동쪽 해역16분 분량

개요

배는 멀쩡한데 사람만 없었다. 폭력의 흔적도, 약탈의 흔적도, 조난 신호도 없었다. 노련한 선장이 아내와 어린 딸까지 태운 배를, 식량과 귀중품을 모두 두고, 망망대해에서 작은 구명정 하나에 의지해 떠났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 단순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메리 셀레스트호는 해양 미스터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

그리고 이 사건은 또 다른 이유로 유명하다. 오늘날 사람들이 "메리 셀레스트"에 대해 안다고 믿는 것의 상당 부분—식탁 위에 차려진 따뜻한 식사, 김이 오르던 찻잔—은 1884년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소설에서 비롯된 허구다. 진짜 미스터리와 만들어진 전설을 가려내는 일부터가 이 사건의 일부다.

배경 — 어느 노련한 선장의 마지막 항해

메리 셀레스트호의 출발은 평범했다. 이 배는 원래 1861년 노바스코샤에서 진수된 아마존호(Amazon)였는데, 1867년 좌초로 난파된 뒤 미국에 매각되어 1868년 메리 셀레스트호로 개명되었고, 1872년 초 대규모 개조를 거쳐 282톤급 브리간틴으로 다시 태어났다 . 1872년 당시 지분의 일부는 선장 본인이 소유하고 있었다.

선장 벤저민 스푸너 브릭스(Benjamin Spooner Briggs)는 당시 37세로, 독실하고 절제 있는 베테랑 항해사였다. 그는 이 항해에 아내 사라(Sarah Elizabeth Briggs)와 두 살배기 딸 소피아(Sophia Matilda Briggs)를 데려갔다. 학업 중이던 아들 아서(Arthur)만 육지에 남겨두었는데, 훗날 이 사실은 "브릭스가 보험금을 노린 사기 따위를 꾸몄을 리 없다"는 강력한 정황으로 인용된다 .

승무원은 7명이었다. 1등 항해사 알버트 리처드슨(Albert G. Richardson), 2등 항해사 앤드루 길링(Andrew Gilling), 사무장 에드워드 헤드(Edward William Head), 그리고 독일계 선원 네 명(로렌젠 형제, 마르텐스, 가우드샬). 브릭스는 출항 전 모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원들에게 만족한다고 적었다. 이들은 "온순하고 일류 선원"으로 평가되었다 .

화물은 미국의 한 회사가 제노바로 보내는 변성/공업용 알코올 1,701배럴이었다. 목적지는 이탈리아 제노바(Genoa). 평범한 대서양 횡단 무역 항해였다 .

타임라인

  1. 1861-05-18
    아마존호(Amazon)로 노바스코샤에서 진수
  2. 1868-12
    메리 셀레스트호로 개명, 미국 선적 재등록
  3. 1872-01
    뉴욕에서 대규모 개조 완료(282톤급으로 확장)
  4. 1872-11-05
    뉴욕 Pier 50에서 이안(離岸). 악천후로 인근에 대기
  5. 1872-11-07
    스태튼 아일랜드 인근에서 대서양으로 본격 출항
  6. 1872-11-15
    데이 그라티아호(Dei Gratia)가 뉴욕 인근에서 뒤따라 출항
  7. 1872-11-25
    메리 셀레스트호 마지막 항해일지 기록 — 산타마리아 섬 부근(약 37°N 25°W)
  8. 1872-12-04
    데이 그라티아호가 표류하는 메리 셀레스트호 발견(일부 출처는 12-05)
  9. 1872-12-13
    메리 셀레스트호 지브롤터로 예인 도착
  10. 1872-12-17
    지브롤터 해사 심문(Vice-Admiralty Court) 개시
  11. 1873-02-25
    법원 관할에서 해제, 부정행위 증거 없음
  12. 1873-04
    데이 그라티아호 선원에게 인양 보상금 £1,700 선고
  13. 1884-01
    코난 도일의 소설 'J. Habakuk Jephson's Statement' 익명 발표 — 전설의 시작
  14. 1885-01-03
    메리 셀레스트호, 보험 사기 목적으로 아이티 인근에서 고의 좌초·파괴되며 최후

현장 — 데이 그라티아호가 본 것

11월 25일 오전, 산타마리아 섬 부근에서 마지막 일지가 기록된 뒤 메리 셀레스트호는 9일 동안 표류했다. 12월 초, 데이 그라티아호의 선장 데이비드 모어하우스(David Morehouse)와 선원들이 약 740km 떨어진 해역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배를 발견했다. 1등 항해사 올리버 드보(Oliver Deveau)가 작은 보트로 건너가 빈 배에 올랐다 .

이 조합—없어진 구명정, 끊긴 밧줄, 사라진 항해 도구, 그러나 그대로 남은 식량과 귀중품—은 한 가지를 강하게 시사한다. 선원들이 재난을 당해 휩쓸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명정을 내려 의도적으로 배를 떠났다는 것이다. 무언가가 그들에게 "이 배는 곧 가라앉는다"고 믿게 만들었고, 그들은 급히 그러나 어느 정도 질서 있게 떠났다 .

지브롤터 심문 — 의심받은 구조자들

데이 그라티아호 선원들은 메리 셀레스트호를 지브롤터로 예인해 인양 보상(salvage)을 청구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들은 구조자가 아니라 용의자가 되었다. 지브롤터의 검찰관 프레더릭 솔리-플러드(Frederick Solly-Flood)가 부정행위를 강하게 의심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모든 의심은 무너졌다. 검과 갑판의 얼룩을 화학 분석한 결과 혈액이 아닌 녹(rust) 등으로 판명되었다. 화물과 귀중품이 온전해 약탈 동기가 없었고, 데이 그라티아호는 더 느린 배로 8일이나 늦게 출항해 메리 셀레스트호를 따라잡아 습격할 수 없었다. 석 달 넘는 심문 끝에 법원은 부정행위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데이 그라티아호 선원들은 1873년 4월 인양 보상금 £1,700을 받았다 .

핵심 의문

법원의 결론은 "원인 불명"이었다. 남은 의문은 단순하다. 노련한 선장이, 항해 가능한 멀쩡한 배를, 6개월치 식량과 귀중품을 두고, 아내와 두 살 딸까지 데리고, 망망대해에서 작은 구명정 하나에 옮겨 탄 이유는 무엇인가?

확실한 것은 그들이 패닉이 아니라 판단에 따라 배를 떠났다는 점이다. 항해 도구와 서류를 챙겼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그들은 본선이 곧 가라앉을 것이라 믿었고, 구명정으로 옮겨 탔다가—본선과의 연결줄이 끊어지면서—망망대해에 버려졌을 것이다. 정작 메리 셀레스트호는 가라앉지 않고 9일을 더 떠 있었다. 만약 그들이 배에 남았더라면 모두 살았을 것이다. 무엇이 그 치명적인 오판을 일으켰는가가 핵심이다 .

가설

통설 정정 — 소설이 만든 전설

이 사건이 특별한 이유는, 대중이 "사실"이라 믿는 것의 상당수가 후대 픽션이라는 데 있다. 1872년의 실제 기록은 훨씬 단조롭다.

도일의 소설 이후에도 가짜 "생존자 증언"이 거듭 등장했다가 모두 날조로 밝혀졌다. 1913년 The Strand Magazine에 실린 "에이벨 포스다이크(Abel Fosdyk)의 수기"는, 톤수를 실제의 두 배 이상으로 적고 독일계 선원들을 영국인으로 바꾸는 등 기본 사실이 어긋나 문학적 위작으로 분류됐다. 1929년 로런스 키팅(Laurence Keating)이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된 "존 펨버턴(John Pemberton) 생존자 증언"은, 핵심 증인을 제시하라는 요구에 키팅이 끝내 응하지 못해 증인도 필명도 모두 키팅 본인의 날조로 드러났다 .

정리하면, 사실은 다음과 같다: 빈 배, 사라진 구명정, 끊긴 밧줄, 챙겨간 항해 도구, 선창의 물, 분해된 펌프, 1872년 11월 25일의 마지막 일지, 칼집의 검(혈흔은 아님). 허구는 다음과 같다: 따뜻한 식사와 찻잔, 타던 시가, 그대로 있던 구명정, 살인극, "Marie Celeste"라는 이름, 모든 생존자 증언.

현재 상태 — 영원히 빈 채로

오늘날 검증 가능한 자료들이 모이는 곳은 어느 한 사건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겹친 사고(misadventure) 시나리오다. 부정확한 크로노미터로 인한 위치 오판, 석탄 분진으로 막힌 펌프, 선창의 침수, 어쩌면 새어 나온 알코올 증기에 대한 공포—이것들이 합쳐져, 노련한 선장조차 "배가 곧 가라앉는다"고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멀쩡한 배를 버리고 구명정에 옮겨 탔고, 본선과 분리되어 바다에 삼켜졌다. 정작 버려진 배는 9일을 더 떠 있다가 발견되었다.

이 설명은 가장 그럴듯하지만 어느 것도 결정적 증거가 없다. 반란·해적·보험사기·초자연 설은 모두 증거 부족으로 기각되었고, 알코올 폭발설은 과학적으로 재조명되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메리 셀레스트호는 우리가 거의 알지만 끝내 확신할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

출처

  1. Mary Celeste — Wikipedia
  2. Abandoned Ship: The Mary Celeste — Smithsonian Magazine
  3. The mystery of the Mary Celeste — Royal Museums Greenwich
  4. What happened to the Mary Celeste? — History.com
  5. Chemists think they know what happened on board the Mary Celeste — Chemistry World
  6. J. Habakuk Jephson's Statement — Wikipedia
  7. Abel Fosdyk papers — Wikipedia
  8. What really happened to the Mary Celeste? — The Straight Dope
  9. The Mary Celeste — Facts not Fiction (maryceleste.net)
  10. Dei Gratia (brigantin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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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550~1050년경 · 키프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