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렌체의 괴물
1968년부터 1985년까지 이탈리아 피렌체 외곽에서 차 안의 연인 8쌍 16명이 같은 권총에 살해됐다. 여러 차례 기소와 유죄·번복이 이어졌으나 진범은 끝내 특정되지 않았다.
개요
이 사건은 약 17년에 걸친 연쇄살인이면서, 동시에 이탈리아 사법사에서 가장 길고 논쟁적인 수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한 자루의 권총이 여러 현장을 잇는 결정적 단서였지만, 그 권총을 쥔 사람의 정체는 끝내 합의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사르데냐 출신 일가, 한 농부와 그의 지인들, 그리고 신원 미상의 배후 집단까지 차례로 의심의 대상이 됐고, 그때마다 새로운 기소와 유죄 판결, 그리고 번복이 반복됐다. 피렌체와 토스카나 일대는 한 세대 내내 '괴물'이라는 그림자와 함께 살았다.
범행은 대체로 인적이 끊긴 시골길이나 숲 가장자리에 주차된 차량을 표적으로 삼았고, 알려진 사건 다수가 달빛이 약한 밤에 일어났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외진 곳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젊은 연인들이었다. 범인은 일관되게 같은 무기를 사용했고, 일부 사건에서는 여성 피해자의 시신을 차 밖으로 옮겨 신체 일부를 제거하는 등 의도가 분명한 훼손을 가했다. 본 문서는 실존 피해자를 다루므로 시신 훼손의 구체적 묘사는 사실 요지로만 한정하고, 확인된 사실과 수사 경과에 집중한다.
배경 — 1968년의 첫 사건과 동일 무기
당시 수사는 비교적 단순하게 종결됐다. 로치의 남편 스테파노 멜레(Stefano Mele)가 유죄로 처리돼 복역했고, 사건은 사르데냐 이주민 사회 내부의 치정에 의한 단발성 살인으로 간주됐다. 로치는 여러 남성과의 관계로 지역에서 입길에 오르던 인물이었고, 수사진은 질투와 복수라는 익숙한 동기 안에서 사건을 닫았다. 누구도 이 한 건의 살인이 17년에 걸친 연쇄의 시작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1974년 이후 같은 .22구경 베레타와 동일한 윈체스터 탄이 잇따른 연인 살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검출되면서, 1968년 사건의 무기가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74년 보르고 산 로렌초에서 일어난 사건에서는 총격에 더해 시신 훼손이 처음으로 확인됐고, 이는 이후 사건들의 특징적 수법으로 이어졌다. 무기의 동일성이 확인되면서 수사진은 1968년 사건을 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단발성으로 처리됐던 그 사건이, 실은 한 권총의 긴 여정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타임라인
- 1968-08-21시냐: 안토니오 로 비안코와 바르바라 로치 살해. 남편 스테파노 멜레가 유죄 처리되어 복역
- 1974-09-15보르고 산 로렌초: 파스콸레 젠틸코레와 스테파니아 페티니 살해. 시신 훼손이 처음 확인됨
- 1981-06-06스칸디치: 조반니 포지와 카르멜라 데 누초 살해
- 1981-10-23칼렌차노: 스테파노 발디와 수산나 캄비 살해
- 1982-06-19몬테스페르톨리: 파올로 마이나르디와 안토넬라 밀리오리니 살해. 같은 해 1968년 무기와의 탄도 연결이 부각됨
- 1983-09-09갈루초: 독일 청년 호르스트 빌헬름 마이어와 옌스 우베 뤼쉬 살해
- 1984-07-29비키오: 클라우디오 스테파나치와 피아 질다 론티니 살해
- 1985-09-07산 카샤노: 프랑스 관광객 장 미셸 크라베이치빌리와 나딘 모리오 살해. 알려진 마지막 사건
- 1994피에트로 파치아니, 1심에서 다수 사건에 대해 유죄 선고
- 1996항소심에서 파치아니 무죄·석방. 대법원이 재심을 명령
- 1998파치아니 사망. 같은 시기 '소풍친구들'의 마리오 반니·잔카를로 로티가 유죄
- 20241983·1984·1985년 현장의 탄에서 추출된 동일 DNA가 기존 유죄자와 불일치한다는 분석 공개
수사 — 사르데냐 트레일과 용의자들
이 방향의 전제는 명확했다. 1968년에 그 권총을 손에 넣었거나 사용했던 인물, 또는 그와 가까운 누군가가 그것을 보관하다 다시 범행에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사는 로치를 둘러싼 사르데냐 출신 남성들의 관계망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살바토레 빈치의 첫 부인이 사르데냐에서 화재로 숨진 사건이 자살로 처리됐지만 타살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점도 의심을 키웠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사르데냐에서의 재판은 무죄로 끝났다.
결국 사르데냐 트레일은 결정적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1980년대 말 검찰은 이 방향이 소진됐다고 판단했고, 관련 인물 다수가 사실상 혐의를 벗었다. 여러 사람이 길게는 1년 넘게 구금됐다가 풀려난 뒤였다. 한 갈래의 수사가 통째로 닫히면서, 수사는 이후 전혀 다른 인물, 농부 피에트로 파치아니(Pietro Pacciani)로 옮겨갔다.
파치아니에 대한 의심은 곧 그의 지인들로 번졌다. 마리오 반니(Mario Vanni)와 잔카를로 로티(Giancarlo Lotti)가 공범으로 기소됐는데, 반니가 자신과 파치아니는 그저 함께 소풍을 다닌 사이일 뿐이라며 쓴 표현 '콤파니 디 메렌데(compagni di merende, 소풍친구들)'가 이들 무리의 별칭이 됐다. 로티는 처음에는 수사의 핵심 증인으로서 파치아니와 반니의 범행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가, 점차 스스로의 가담까지 인정하는 쪽으로 진술을 바꿔갔다. 반니와 로티는 1998년 이후 유죄가 확정됐고, 대법원은 2000년 이 판결을 확정했다. 반면 함께 기소됐던 또 다른 인물은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이로써 형식적으로는 일부 사건에 대한 유죄가 확정됐지만, 사건의 핵심 물증인 권총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유죄가 확정된 인물들의 진술 외에 이들을 총격범으로 직접 연결하는 결정적 증거도 제시되지 못했다. 유죄 판결과 미해결이라는 평가가 공존하는 이 사건의 모순은 여기서 비롯된다.
핵심 의문
첫째, 동일한 권총과 탄이라는 강력한 물증이 있는데도 그것을 쥔 사람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기는 사건들을 묶어 주었지만 범인을 가리키지는 못했다.
둘째, 유죄가 확정된 반니·로티가 실제 총격범인지에 대한 회의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로티의 진술은 시점에 따라 내용이 달라졌고, 일부 피해자 측 변호인은 그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사건 재개를 요구했다.
셋째, 파치아니와 그 지인들이 살인의 실행자라 하더라도 누가, 왜 시켰는가라는 동기와 배후의 문제가 남는다는 점이다. 일부 수사진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보기 어렵다고 보았고, 다른 이들은 그러한 배후를 상정할 근거가 빈약하다고 반박했다. 이 공백이 이후 여러 가설을 낳았다.
넷째, 1968년의 첫 사건과 1974년 이후의 사건들이 정말 한 사람의 손으로 이어진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무기는 분명히 같았지만, 그 무기가 사람의 손을 옮겨 다녔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권총 하나가 묶어 준 사건의 연쇄가 곧 범인 한 사람의 연속을 뜻하는지는, 물증만으로는 끝내 확정되지 않았다.
가설
미국 작가 더글러스 프레스턴(Douglas Preston)과 이탈리아 기자 마리오 스페치(Mario Spezi)는 2008년 영어판으로 출간된 'The Monster of Florence'에서 파치아니의 범인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르데냐 계열의 다른 인물을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독자적 취재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도리어 수사 선상에 올랐다. 프레스턴은 신문을 받고 사실상 출국 권고를 받았으며, 스페치는 수사 방해 혐의로 23일간 구금됐다가 혐의가 뒤집혀 풀려났다. 이 일은 당시 수사의 신뢰성 논란을 키웠다.
현재 상태
사건은 학계와 대중문화에서도 오랫동안 다뤄졌다. 더글러스 프레스턴과 마리오 스페치의 책 외에도 다수의 보도와 다큐멘터리, 2025년 공개된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등이 이 사건을 재조명했다. 그러나 작품들이 늘어나는 동안에도 핵심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16명의 피해자, 한 자루의 권총, 그리고 합의되지 않은 범인의 정체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피렌체의 괴물 사건은 동일한 권총이라는 또렷한 물증과 끝내 비어 있는 범인의 자리를 함께 남긴 채, 이탈리아 최대의 미제로 남아 있다. 2024년의 DNA 분석처럼 새로운 과학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나, 그것이 진범의 이름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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