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프쿤드 해골 호수
히말라야 5,000m 고지의 빙하호 루프쿤드에서 1942년 수백 구의 인골이 발견됐다. 누가, 왜 죽었나—2019년 고DNA 연구는 단일 재난이 아니라 약 1,000년 간격을 둔 서로 다른 집단의 죽음임을 밝혀냈지만, 정작 그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개요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유골들이 한 번의 재난—전염병, 폭설, 혹은 길을 잃은 순례단의 최후—에서 비롯된 단일 사건의 흔적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2019년, 38구의 유골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고DNA·방사성탄소 연구는 그 전제를 뒤집었다. 이들은 한 시대, 한 집단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약 1,000년의 간격을 두고,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무리들이 같은 호숫가에서 죽음을 맞은 것이다. 유전학은 "누구인가"의 일부를 풀었지만, "왜 여기 왔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의문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루프쿤드는 일부만 규명된 채 남아 있는 사건이다.
배경 — 해발 5,000m의 호수와 1942년의 발견
루프쿤드는 면적이 작고 깊이가 2m 남짓한, 한 해의 대부분이 얼어 있는 빙하호다. 여름철 잠깐 얼음이 녹는 동안에만 바닥의 유골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호수에 이르려면 험준한 고산 트레킹을 거쳐야 하며, 주변에는 인가도, 정착의 흔적도 없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고지에 인골만 수백 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장소를 기이하게 만든다.
발견 초기에는 추측이 무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경로를 넘다 죽은 일본군 병사들의 유해라는 설이 한때 진지하게 검토됐을 정도였다. 그러나 유골은 전쟁보다 훨씬 오래된 것으로 드러났고, 미스터리는 본격화됐다. 인근 토착 전승에는 난다데비 여신과, 산을 모독한 죗값으로 신이 내린 재앙에 휩쓸려 죽은 왕 자스다왈(Jasdhaval) 일행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지에서 12년마다 열리는 난다데비 라지 자트(Nanda Devi Raj Jat) 순례 행렬이 지나는 길목이기도 해, 유골을 순례단의 최후와 연결짓는 해석이 오래 이어졌다.
타임라인
- 약 7~10세기남아시아계 집단(23명)이 호수에서 사망 — 한 번이 아닌 여러 사건일 가능성
- 약 17~19세기동지중해계(14명)·동남아시아계(1명)가 사망 — 약 1,000년 후의 별개 사건
- 1942년산림 경비원 하리 키샨 마드왈이 호숫가 유골을 보고, 세상에 알려짐
- 1950~60년대초기 조사·추측 — 일본군 병사설, 전염병설, 순례단 재난설 등 제기
- 2003~2004년내셔널 지오그래픽 조사 — 두개골·어깨의 둔기 외상 확인, '거대 우박설' 제기
- 2019년 8월Nature Communications에 38구 고DNA·방사성탄소 연구 발표 — 다집단·다시기로 규명
2019년 DNA 연구 — 확인된 사실
수십 년간의 추측은 2019년 8월 Nature Communications에 실린 대규모 연구로 한 차례 정리됐다. 인도·미국·유럽의 16개 기관, 28명의 연구진이 참여한 이 작업은 인도에서 나온 첫 전장유전체(whole-genome) 고DNA 데이터를 포함했다.
안정동위원소 분석은 이 차이를 뒷받침했다. 남아시아계 그룹은 C₃·C₄ 식물을 두루 섭취한 다양한 식단을 보인 반면, 지중해계 그룹은 기장(millet)을 거의 먹지 않은 식단을 보여, 서로 다른 지역·생활권에서 온 사람들임을 가리켰다.
핵심 의문 — 그들은 누구이며, 왜 거기서 죽었나
2019년 연구가 한 가지를 분명히 했다면, 그것은 "루프쿤드의 죽음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점이다. 적어도 약 1,000년의 시차를 둔 둘 이상의 별개 사건이 같은 호숫가에 유해를 남겼다.
남아시아계 그룹에 대해서는 비교적 그럴듯한 설명이 가능하다. 이 지역을 지나는 순례·이동 경로가 실재했고, 여러 시기에 걸친 퇴적은 "여러 차례의 사고"라는 그림과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두 번째 그룹은 전혀 다른 종류의 수수께끼를 던진다.
가설
현재 상태 — 무엇이 풀렸고, 무엇이 남았나
2019년 연구로 분명해진 것과 여전히 열려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이 갈린다.
규명된 것
- 루프쿤드 유골은 단일 사건의 산물이 아니다. 적어도 약 1,000년 간격을 둔 둘 이상의 별개 사건이다.
- 유전적으로 뚜렷한 세 집단(남아시아계 다수, 동지중해계, 동남아시아계 1명)이 확인됐다.
- 7~10세기 남아시아계 그룹의 두개골·어깨 외상 양상은 거대 우박 등 위에서의 낙하 충격과 일치한다.
남은 의문
- 19세기 동지중해계 14명이 왜 히말라야 고지까지 와서 죽었는가 — 정체·동기·사인 모두 미상.
- 동남아시아계 개인은 누구이며 어떤 경로로 이 무리에 합류했는가.
- 남아시아계 그룹의 "여러 시기 퇴적"이 각각 어떤 사건이었는지.
이 유해들은 학술 연구의 대상인 동시에, 한때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의 흔적이기도 하다. 호숫가에 흩어진 뼈를 단순한 '미스터리 소재'로만 다루지 않으려는 신중함—그것이 루프쿤드를 마주하는 또 하나의 태도다.
출처
- Roopkund — Wikipedia
- Harney et al. (2019), Ancient DNA from the skeletons of Roopkund Lake reveals Mediterranean migrants in India — Nature Communications
- Biomolecular analyses of Roopkund skeletons show Mediterranean migrants in Indian Himalaya — Max Planck Institute
- DNA study deepens mystery of lake full of skeletons — National Geographic
- Biomolecular analyses of Roopkund skeletons — ScienceDaily
- Biomolecular analyses of Roopkund skeletons show Mediterranean migrants in Indian Himalaya — Phy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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