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해결실종

생텍쥐페리 실종

'어린 왕자'의 작가이자 비행사 생텍쥐페리는 1944년 코르시카 기지에서 정찰기를 몰고 떠난 뒤 지중해에서 사라졌다. 반세기 뒤 잔해는 확인됐지만, 무엇이 그를 바다로 끌어내렸는지는 아직 결론이 없다.

1944년 7월지중해 (코르시카 인근)9분 분량

개요

생텍쥐페리는 이미 세계적 작가였다. 우편 비행과 사막 불시착의 경험을 녹여 쓴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그리고 1943년 미국에서 펴낸 《어린 왕자》로 명성을 얻은 그가 마흔 넷의 나이에 다시 조종간을 잡고 사라졌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가 됐다. 그 뒤로 반세기 동안 사람들은 "어린 왕자가 별로 돌아갔다"는 식의 낭만적 해석을 덧붙이곤 했다.

그러나 사건의 실제는 그보다 훨씬 불확실하다. 생텍쥐페리 사건은 흔히 "미해결 실종"으로 묶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두 개의 다른 물음으로 나뉜다. 하나는 "그와 그의 비행기가 어디로 갔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이 그를 떨어뜨렸는가"이다. 앞의 물음은 1998년의 팔찌와 2000년대 초의 잔해 발견으로 답이 나왔다. 뒤의 물음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의 마지막 비행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잔해가 발견된 지금도 명확히 답할 수 없다.

배경 — 작가이자 비행사

생텍쥐페리에게 비행과 글쓰기는 한 몸이었다. 1920년대 후반 라테코에르사의 항공우편 노선에서 사하라와 남미 상공을 날았고, 그 체험이 그대로 작품의 뼈대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는 정찰 비행대에 자원했고, 프랑스 함락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자유프랑스 공군 정찰대 GR 2/33 '사부아(Savoie)'에 합류했다.

문제는 그의 몸 상태였다. 그는 작전 부대 평균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고, 여러 차례의 추락 사고로 입은 부상 때문에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지 못했으며 혼자 비행복을 입기조차 어려웠다고 전한다. 규정상 그는 이미 비행 연령을 넘긴 상태였지만, 상징적 가치 때문에 제한적으로 임무 수행이 허용됐다. 고고도·장거리 정찰을 단독으로 수행하는 P-38은, 이런 몸으로 다루기에 결코 만만한 기체가 아니었다.

타임라인

  1. 1900-06-29
    프랑스 리옹에서 출생
  2. 1939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정찰 비행대 자원
  3. 1943-04
    미국에서 《어린 왕자》 출간
  4. 1943
    북아프리카에서 자유프랑스 공군 정찰대 GR 2/33 합류
  5. 1944-07-31
    코르시카 기지에서 정찰 임무 이륙 — 미귀환
  6. 1944-08-08
    공식 실종(전투 중 행방불명) 처리
  7. 1998-09
    어부 장클로드 비앙코, 마르세유 앞바다에서 이름 새겨진 은팔찌 인양
  8. 2000-05
    잠수사 뤼크 반렐, 마르세유만 해저에서 P-38 잔해 발견
  9. 2003-10
    잔해 일부 인양 — 터보차저에 일련번호 '2734 L'
  10. 2004-04
    프랑스 당국, 생텍쥐페리의 기체로 공식 확인 발표
  11. 2008-03
    전 독일 공군 조종사 호르스트 리페르트, '내가 격추했을 것'이라 주장

마지막 비행(1944)

1944년 7월 31일 아침, 생텍쥐페리는 코르시카에서 이륙해 알프스 남부와 그르노블·론강 유역 일대를 촬영하는 정찰 임무에 올랐다. F-5B는 무장을 떼어내고 카메라를 장착한 기체였다. 무전 교신이나 목격담이 거의 남지 않은 탓에, 그가 정확히 어느 항로를 따라 어디까지 갔는지조차 분명치 않다.

그는 정해진 시각이 한참 지나도 코르시카로 돌아오지 않았다. 연료가 바닥날 시간이 지나자 부대는 그가 추락했음을 받아들였다. 1944년 8월 8일, 그는 전투 중 행방불명으로 공식 처리됐다. 잔해도, 시신도, 직접적인 목격자도 없었다. 이 '흔적 없는 사라짐' 때문에 그의 죽음은 곧장 미스터리가 됐다.

전쟁 막바지의 혼란 속에서 단독 정찰기 한 대의 실종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라진 이가 《어린 왕자》의 작가였던 탓에, 그의 마지막 비행은 곧 전설로 옮겨갔다. 그가 일부러 돌아오지 않았다거나, 우울에 짓눌려 스스로 바다로 향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떠돌았다. 다만 이런 해석들은 어느 것도 검증된 자료에 근거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그의 흔적은 정말로 아무 데서도 나오지 않았다.

잔해의 발견 — 팔찌와 P-38

잠수사 뤼크 반렐(Luc Vanrell)은 이미 1980년대 후반에 그 부근 해저에서 항공기 잔해를 본 적이 있었고 — 처음엔 독일기로 여겼다 — 팔찌 소식 이후 본격 조사에 나섰다. 2000년 5월, 그는 마르세유만 약 83~85m 깊이에서 P-38 잔해를 확인했다. 2003년 10월 인양된 부품 가운데 왼쪽 터보차저 패널에 일련번호 '2734 L'이 남아 있었다.

이로써 "어디서 사라졌는가"라는 물음에는 답이 나왔다. 그는 마르세유 앞바다에 추락했고, 그 잔해는 확인됐다. 풀린 부분은 여기까지다.

핵심 의문 — 왜 추락했나

식별이 끝난 뒤에도 핵심 질문은 그대로 남았다. 무엇이 그를 바다로 떨어뜨렸는가.

문제는 인양된 잔해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조사팀은 수습된 부분에서 총격에 의한 탄흔이나 구멍을 찾지 못했다. 다만 기체의 작은 일부만 건져 올렸기 때문에, 탄흔이 없다는 사실이 격추를 배제하는 결정적 근거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잔해의 분포와 손상 양상은 기체가 고속으로 거의 수직에 가깝게 바다에 충돌했을 가능성과 부합하지만, 그것만으로 원인을 특정할 수는 없다.

또 하나의 난점은 위치다. 잔해가 발견된 마르세유 남쪽 해역은, 그가 비행했어야 할 예상 항로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왜 그가 그곳에 있었는지 — 항로를 이탈한 것인지, 회피 기동을 한 것인지,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 — 는 설명되지 않는다. 격추설을 뒷받침하려는 쪽에서는 이 항로 이탈을 회피 기동의 흔적으로 읽기도 하지만, 똑같은 이탈을 기계 고장이나 방향 상실의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같은 사실이 서로 다른 결론을 가리키는 셈이다.

요컨대 잔해는 "그가 여기에 가라앉았다"까지만 말해 줄 뿐, "그가 왜 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카메라 필름은 남아 있지 않았고, 비행기록장치도 없던 시대였다. 마지막 순간을 직접 증언할 자료가 부재한 상황에서, 추락 원인은 정황과 추론의 영역에 머물 수밖에 없다.

가설

종합하면, 잔해의 위치는 확인됐지만 추락 원인은 격추·기계결함·건강 등 어느 쪽으로도 확정되지 않았다. 현재 상태가 '부분해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그가 어디서 가라앉았는지는 알지만, 왜 가라앉았는지는 모른다.

출처

  1. Antoine de Saint-Exupéry — Wikipedia
  2. The Little Prince's Last Flight — The National WWII Museum
  3. Luc Vanrell: The story behind the discovery of Saint-Exupéry's P-38 — WW2Wrecks
  4. The P38 flown by Saint-Exupéry — French Ministry of Culture, Underwater Archaeology
  5. Former Luftwaffe pilot says he may have shot down author of The Little Prince — CBC News
  6. Mysteries of Flight: The Disappearance of Antoine de Saint-Exupéry — Plane & 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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