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S 와라타호 실종
1909년 7월 영국 블루앵커 라인의 신형 호화 증기선 SS 와라타호가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다 와일드코스트 앞바다에서 승객·승무원 211명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진 사건. 잔해·생존자·구명정 모두 끝내 발견되지 않아 '남쪽의 타이타닉'으로 불린다.
개요
이 글이 다루는 것은 '와라타호가 어디로 갔는가'가 아니라, 211명을 태운 9,000톤급 신조선이 어떻게 단 하나의 물증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 있었는가라는 물음이다. 사건은 ⑴ 출항 전부터 제기된 복원성(무게중심) 의혹, ⑵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들이닥친 폭풍, ⑶ 수십 년에 걸친 수색의 실패라는 세 겹으로 얽혀 있다. 이 글은 확인된 사실과 추정, 그리고 경합하는 가설을 구분해 읽는다.
배경 — 신형 여객선
화려한 설계와 높은 선급 등급에도 불구하고, 와라타호에는 복원성에 대한 의문이 따라다녔다. 복원성이란 배가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 스스로 똑바로 되돌아오려는 성질로,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높으면 옆질(롤링)이 심해지고 한 번 기울면 잘 돌아오지 못한다.
타임라인
- 1908.09.12글래스고 바클레이 커를 조선소에서 와라타호 진수 — 9,339톤급 여객·화물 증기선
- 1908.11런던 출항, 호주를 향한 처녀항해 시작 — 복원성에 대한 우려가 항해 중 보고됨
- 1909.07.26 저녁더반 출항, 케이프타운으로 향함 — 승객·승무원 211명 탑승
- 1909.07.27 새벽~오전증기선 클랜 매킨타이어(Clan MacIntyre)호가 음바셰강(바시강) 하구 부근에서 와라타호를 목격, 신호 교환 후 마지막 확인 목격
- 1909.07.27 밤유니언캐슬 정기선 궬프(Guelph)호가 한 선박과 등불 신호를 교환, 선명의 끝 세 글자 'T-A-H'만 식별 — 와라타호로 추정되는 마지막 신호
- 1909.07.28와일드코스트 일대에 격심한 폭풍 발생 — 클랜 매킨타이어호 선장은 '13년 항해 중 최악의 날씨'로 기록
- 1909.08.01예인선 T.E. 풀러호와 영국 해군 순양함(HMS 판도라·포르테 등)이 수색 개시
- 1909.09~화물선 사빈(Sabine)호를 용선해 8주간 약 1만 4천 해리를 수색 — 성과 없음
- 1909.12.15와라타호, 로이즈에 공식 '실종'으로 등재
- 1910~1911런던에서 무역위원회(Board of Trade) 조사 — 설계·건조는 정상이라 보았으나 결론 미확정
- 1999해양탐사가 엠린 브라운(Emlyn Brown), 동부 해안 앞바다에서 와라타호로 추정되는 잔해 발견 발표
- 2001잠수 조사 결과, 그 잔해는 2차 대전 중 침몰한 화물선 네일시 메도(Nailsea Meadow)호로 판명 — 오인
- 2004엠린 브라운, 22년간의 수색을 단념
마지막 항해와 실종
와라타호는 호주에서 영국으로 돌아가는 항해의 중간 기항지인 더반에 들렀다가, 1909년 7월 26일 저녁 케이프타운을 향해 출항했다. 배에는 승객과 승무원 211명이 타고 있었고, 화물칸에는 납 정광(연 정광)을 비롯한 중량 화물이 실려 있었다.
이튿날인 7월 28일, 와일드코스트 앞바다에는 격렬한 폭풍이 들이닥쳤다. 와라타호를 마지막으로 본 클랜 매킨타이어호 선장은 그날의 날씨를 자신의 13년 항해 경력 중 최악으로 기록했다. 와라타호가 예정대로 케이프타운에 입항하지 않으면서, 처음에는 단순 지연으로 여겨졌던 상황이 점차 실종으로 굳어졌다.
수색과 잔해 추적
와라타호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대규모 수색이 시작됐다. 1909년 8월 1일 예인선 T.E. 풀러호가 출동했고, 영국 해군 순양함(HMS 판도라, 포르테 등)이 투입됐다. 9월에는 화물선 사빈(Sabine)호를 용선해 약 8주간 1만 4천 해리에 이르는 해역을 훑었고, 이듬해 초에는 또 다른 증기선이 케르겔렌 제도까지 포함한 광역 수색을 벌였다. 그러나 어느 수색도 잔해 한 조각, 구명정 하나 찾아내지 못했다. 1909년 12월 15일, 와라타호는 로이즈 보험시장에 공식적으로 '실종'으로 등재됐다.
20세기 후반에는 해양탐사가 엠린 브라운(Emlyn Brown)이 수십 년에 걸쳐 와라타호를 추적했다. 1999년 그는 남아프리카 동부 해안 앞바다에서 와라타호로 추정되는 잔해를 찾았다고 발표했으나, 2001년 잠수 조사 결과 그 잔해는 와라타호가 아니라 2차 대전 중 침몰한 화물선 네일시 메도(Nailsea Meadow)호로 밝혀졌다. 결국 브라운은 2004년, 약 22년에 걸친 수색을 단념했다.
핵심 의문
이 사건의 의문은 세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배는 왜 단번에 사라졌는가. 통상적인 침몰이라면 표류물·기름띠·구명정 같은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와라타호는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이는 배가 극히 짧은 시간에 통째로 가라앉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둘째, 복원성 의혹은 실재했는가. 출항 전부터 제기된 '무게중심이 높다'는 우려가 실제 결함이었는지, 아니면 사후에 비극을 설명하려는 인상에 불과했는지. 무역위원회 조사조차 이 점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셋째, 무엇이 마지막 일격이었는가. 폭풍, 거대 이상파도, 화재·폭발, 화물 이동 가운데 어느 것이 실제 방아쇠였는지를 물증 없이 가려낼 수 있는가.
가설
종합하면, 와라타호 실종에서 확인된 사실은 ⑴ 1909년 7월 26일 더반을 떠나 211명과 함께 사라졌다는 점, ⑵ 27일 클랜 매킨타이어호가 마지막으로 명확히 목격했고 28일 격렬한 폭풍이 닥쳤다는 점, ⑶ 대규모 수색에도 잔해·시신·생존자가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⑷ 1999년의 잔해 발견 발표는 2001년 다른 배(네일시 메도호)로 판명됐다는 점이다. 반면 무엇이 배를 가라앉혔는가는 복원성 결함·이상파도·화재 사이에서 여전히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가장 널리 지지받는 시나리오는 본래 취약했던 복원성에, 와일드코스트의 폭풍과 거대 파도가 겹친 복합 원인이지만, 잔해가 발견되지 않는 한 와라타호의 마지막 순간은 추론의 영역에 머문다. 211명을 태운 '남쪽의 타이타닉'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바다 어딘가에 답을 묻은 채 남아 있다.
출처
- SS Waratah — Wikipedia
- The Other Titanic? SS Waratah, the Lost Ship Of South Africa — Historic Mysteries
- The Other Titanic — SS Waratah, the Lost Ship Of South Africa — Master Mariners Australia
- What Happened to the SS Waratah and Has it Been Found? — Discovery UK
- Search for Waratah goes on after 'false' find — IOL
Related · 관련 기록

SS 발렌시아
1906년 1월, 캐나다 밴쿠버섬 케이프 빌 인근 암초에 좌초한 여객 기선 SS 발렌시아호는 약 36시간 동안 천천히 부서지며 약 136명이 숨졌고, 여성과 어린이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난파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수년 뒤부터 '유령선'과 '해골 구명정' 목격담이 따라붙어 미스터리로 전해진다.

벨라 키스
20세기 초 헝가리 치나드의 양철공 벨라 키스는 결혼 광고로 외로운 여성들을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알코올로 채운 양철 드럼통에 보관했다. 1916년 그가 1차대전에 징집된 사이 24구의 시신이 발견됐으나, 키스 본인은 야전병원에서 다른 병사의 시신을 침대에 남기고 사라진 뒤 끝내 잡히지 않았다.

브라이언 섀퍼 실종
오하이오 주립대 의대생 브라이언 섀퍼가 2006년 4월 1일 새벽, 콜럼버스의 술집 '어글리 튜나 살루나'에 들어가는 CCTV는 찍혔으나 그곳을 나오는 장면은 끝내 발견되지 않은 채 사라졌다. 휴대전화·신용카드·은행 거래가 모두 끊긴 채 흔적도 시신도 없이 증발한 이 사건은 20년이 넘도록 미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