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럴 A. 디링호
1921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다이아몬드 숄스에서 5돛대 스쿠너 캐럴 A. 디링호가 모든 돛을 편 채 좌초된 상태로 발견됐다. 취사 중이던 음식만 남고 11명 전원이 흔적 없이 사라져, 미 5개 부처가 조사했으나 100년이 지나도록 미해결로 남았다.
개요
캐럴 A. 디링호 사건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유령선" 미스터리 중 하나다. 미국 정부 5개 부처가 동원된 대형 조사가 벌어졌으나 1922년 공식 결론 없이 종결됐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승조원 11명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같은 시기 인근 해역에서 잇따른 선박 실종과 묶이며 훗날 버뮤다 삼각지대 전설의 핵심 사례로 흡수되었다.
배경 — 디링호와 마지막 항해
캐럴 A. 디링호는 1919년 미국 메인주 배스의 G. G. 디링사(G. G. Deering Company) 조선소에서 건조된 길이 약 255피트(약 78m)의 대형 5돛대 목조 스쿠너였다. 철선이 목조 범선을 밀어내기 직전, 마지막 세대의 대형 목조 화물선 중 하나였다. 배 이름은 선주의 아들 캐럴 애트우드 디링에서 따왔다.
마지막 항해는 석탄을 싣고 버지니아 뉴포트뉴스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항해 초반 원래 선장 윌리엄 메릿(William H. Merritt)이 버지니아 곶 부근에서 병으로 쓰러져, 1920년 8월 은퇴해 있던 66세의 노련한 선장 윌리스 B. 워멜(Willis B. Wormell)이 급히 대신 지휘를 맡았다. 1등 항해사도 메릿의 아들 대신 찰스 B. 매클렐런(Charles B. McLellan)으로 교체됐다. 나머지 선원 대부분은 스칸디나비아계, 특히 덴마크인이었다.
타임라인
- 1919메인주 배스 G. G. 디링사에서 5돛대 스쿠너로 건조
- 1920-08병든 메릿 선장 대신 66세 워멜이 선장으로 합류, 리우데자네이루행
- 1921-01-09바베이도스에서 출항, 미국 뉴포트뉴스로 귀항 시작
- 1921-01-28케이프룩아웃 등대선과 조우 — 붉은 머리 외국인 선원이 '닻을 잃었다'고 알림
- 1921-01-29다이아몬드 숄스로 향하는 배가 목격됨 — 갑판에 사람이 보이지 않음
- 1921-01-31새벽, 다이아몬드 숄스에 좌초된 디링호 발견(해안경비대원 C. P. 브래디)
- 1921-02-04악천후로 지연된 끝에 구조대가 승선 — 선원 전원·구명정·항해일지 사라짐
- 1921-04-11어부 그레이가 '병 속 쪽지' 제시 — 훗날 위조로 판명
- 1921-05워멜 선장의 딸 룰라가 후버 상무장관에게 조사를 청원
- 19225개 부처 합동 조사 공식 결론 없이 종결, 미제로 남음
발견된 정황 / 확인된 사실
마지막으로 디링호와 정상적으로 교신한 것은 1월 28일 케이프룩아웃 등대선이었다. 이때 배에서 한 선원—"붉은 머리에 외국 억양을 쓰는 키 큰 남자"—이 등대선을 향해 케이프피어 부근에서 닻을 잃었다며 선주에게 알려달라고 외쳤다. 당시 갑판 위 선원들의 행동이 평소 상선답지 않게 산만했다는 기록이 함께 남아 있다. 이튿날인 1월 29일, 또 다른 배가 다이아몬드 숄스로 향하는 디링호를 목격했는데 갑판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배는 좌초된 채 여러 달 부서져 갔고, 항해 위험물을 제거하기 위해 결국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었다. 디링호의 물리적 잔해는 그렇게 사라졌다.
핵심 의문 — 11명은 어디로 갔나
확인된 사실은 역설적이다. 구명정과 항해 장비, 일지, 개인 소지품이 함께 사라졌다는 것은 선원들이 무질서한 공황 속 탈출이 아니라, 어느 정도 준비를 갖춘 채 배를 떠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들다 만 음식은 떠남이 갑작스러웠음을 암시하지만, 정작 배 위에는 시신도, 혈흔도, 외부 침입자의 흔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11명은 두 척의 구명정을 타고 어디로 갔는가. 그들이 스스로 배를 버린 것인지, 다른 배에 끌려간 것인지, 폭풍에 휩쓸린 것인지—이 단 하나의 의문에 대해 한 세기 동안 어떤 증거도 결정적 답을 내놓지 못했다.
가설
위조된 '병 속 쪽지'
전설 — 버뮤다 삼각지대
현재 상태 / 남은 의문
워멜 선장의 딸 룰라 워멜(Lula Wormell)은 1921년 5월 워싱턴을 찾아가 당시 상무장관이던 허버트 후버를 움직여 조사를 본격화시켰다. 상무부·재무부·법무부·해군부·국무부 등 5개 부처가 관여한 합동 조사는, 위조 쪽지를 가려내고 여러 가설을 검토했으나 1922년 공식 결론 없이 종결됐다. 리치는 선상반란을 가장 유력하게 보았지만 추가 증거를 위해 사건을 열어둔 채 마무리했다.
오늘날까지 풀리지 않은 핵심 의문은 다음과 같다.
- 11명의 선원은 두 척의 구명정으로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떠나게 했는가
- 항해 장비·일지·개인 물품까지 함께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 인근에서 비슷한 시기에 사라진 SS 휴잇호와 실제 연관이 있는가
- 마지막 교신 때 닻을 잃었다고 알린 '붉은 머리 외국인 선원'은 누구였는가
디링호의 잔해는 폭파로 사라졌고, 생존자도 시신도 끝내 나오지 않았다. 가장 차분한 평가는 선상반란 또는 자발적 이탈 뒤 바다에서의 조난이지만, 어느 것도 입증되지 않았다. 캐럴 A. 디링호는 100년이 넘도록 미국 해양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해결 유령선으로 남아 있다.
출처
- Carroll A. Deering — Wikipedia
- The Carroll A. Deering, 'Ghost Ship' — 노스캐롤라이나주 문화자원부(NC DNCR)
- The Mysterious Disappearance of Ghost Ship Carroll A. Deering's Crew — 미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 The ghost ship and the President — Mike Dash (역사 연구)
- Carroll A. Deering – Ghost Ship on the Diamond Shoals — Legends of America
- The Wreck of the Carroll A. Deering —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Hoover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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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0월 사모아를 떠나 토켈라우로 향하던 상선 조이타호가 약 5주 뒤 남태평양에서 반쯤 침수된 채 표류 발견됐다. 코르크로 부력을 키워 '가라앉을 수 없는 배'라 불렸는데도 탑승자 25명 전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행방은 풀리지 않았다.

베닝턴 트라이앵글
1945~1950년 미국 버몬트주 글래스턴베리산 일대에서 다섯 명이 잇따라 흔적 없이 사라졌다. 작가 조지프 시트로가 이 사건들을 묶어 '베닝턴 트라이앵글'이라 명명했지만, 그 묶음은 사건이 끝난 뒤 사후에 구성된 서사다.

우랑 메단호
구조 요청을 받고 가보니 승조원 전원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죽어 있었고 배는 곧 폭발해 가라앉았다는 유령선 괴담. 그러나 이런 배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