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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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실종

조이타호

1955년 10월 사모아를 떠나 토켈라우로 향하던 상선 조이타호가 약 5주 뒤 남태평양에서 반쯤 침수된 채 표류 발견됐다. 코르크로 부력을 키워 '가라앉을 수 없는 배'라 불렸는데도 탑승자 25명 전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행방은 풀리지 않았다.

1955년 10~11월남태평양 (사모아~토켈라우, 발견은 피지 인근)11분 분량

개요

기이한 것은 조이타호가 사실상 가라앉을 수 없는 배였다는 점이다. 선체에는 코르크가 덧대여 부력이 컸고, 화물칸에는 빈 기름통까지 실려 있었다. 반쯤 물에 잠겨도 떠 있던 배를, 25명은 왜 버렸는가.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1956년 공식 조사위원회조차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고, 조이타호는 메리 셀레스트호와 함께 남태평양 최대의 유령선 미스터리로 남았다.

배경 — '작은 보석'이라 불린 배

조이타호는 193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윌밍턴 보트 워크스(Wilmington Boat Works) 조선소에서 건조된 길이 약 69피트(약 21m)의 목조 호화 요트였다. 처음 주문한 사람은 영화감독 롤런드 웨스트(Roland West)로, 배 이름은 그의 아내인 배우 주얼 카먼의 애칭에서 따왔다. 스페인어 '조이타(joyita)'는 '작은 보석'이라는 뜻이다.

배는 삼나무 선체에 오크 골조를 댄 견고한 구조였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 해군에 징발돼 초계정으로 쓰였다. 전후인 1948년 새 선주에게 넘어가면서 냉장 화물칸 단열을 위해 약 18세제곱미터의 코르크 충전재가 선체에 들어갔다. 이 코르크가 훗날 조이타호를 "가라앉지 않는 배"로 만든 핵심 요소가 된다.

토켈라우행 항해

1955년 10월의 항해는 사모아의 아피아에서 약 270마일 떨어진 토켈라우 제도로 의약품과 목재, 식료품, 그리고 빈 45갤런 기름통 80개를 실어 나르는 일정이었다. 정상 속도라면 약 41~48시간이면 닿을 거리였다. 탑승자 중에는 정부 관리와 두 명의 어린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외과의 앨프리드 '앤디' 파슨스(Alfred "Andy" Parsons)도 있었다. 파슨스는 토켈라우에서 절단 수술을 집도하러 가는 길이었다.

배는 원래 전날 정오 만조에 떠날 예정이었으나 좌현 엔진의 클러치 고장으로 출항이 미뤄졌고, 결국 10월 3일 새벽 5시경 한쪽 엔진만으로 아피아를 떠났다. 이것이 25명을 태운 조이타호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순간이었다.

타임라인

  1. 1931
    로스앤젤레스 윌밍턴 보트 워크스에서 영화감독 롤런드 웨스트의 호화 요트로 건조
  2. 1943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해군 초계정으로 징발
  3. 1948
    민간 매각, 선체에 약 18㎥ 코르크 충전재 설치 — 부력 증가
  4. 1952
    더스티 밀러 선장이 빌려 사모아에서 어업·무역용으로 운영
  5. 1955-10-02
    정오 만조 출항 예정이었으나 좌현 엔진 클러치 고장으로 지연
  6. 1955-10-03
    새벽 5시경 아피아 출항, 한쪽 엔진만으로 토켈라우행 — 25명 탑승
  7. 1955-10-06
    토켈라우에 도착하지 않아 실종 신고, 대규모 수색 시작
  8. 1955-10
    약 10만 평방마일(약 26만㎢) 해역 수색 — 아무것도 발견 못 함
  9. 1955-11-10
    상선 투발루호가 피지 북쪽 해상에서 반쯤 침수돼 표류하는 조이타호 발견 — 무인
  10. 1956-02
    아피아에서 공식 조사위원회 개최 — '증거만으로는 설명 불가'로 종결

발견된 정황 / 확인된 사실

조이타호가 토켈라우에 나타나지 않자 10월 6일부터 대규모 수색이 시작됐다. 뉴질랜드 공군 등이 약 10만 평방마일(약 26만㎢)에 이르는 광대한 해역을 훑었으나 배도, 사람도, 잔해도 찾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조난 신호는 한 번도 수신되지 않았다. 그리고 5주가 지난 11월 10일, 예정 항로에서 까마득히 벗어난 피지 인근 해상에서 배가 표류한 채 발견됐다.

침수의 원인은 이후 조사에서 냉각수 배관의 파열로 지목됐다. 전시에 교체된 부식된 철제 배관이 갈라지면서 물이 새어 들어왔고, 막힌 빌지 펌프로는 이를 퍼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바다 위에서는 이 누수를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함께 나왔다.

핵심 의문 — 25명은 어디로 갔나

발견 당시의 정황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배는 침수되긴 했어도 5주 동안 떠 있을 만큼 멀쩡했고, 어떤 구명뗏목보다도 안전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가라앉지 않는 배를 버리고 작은 뗏목에 의지해 망망대해로 나간 듯 보인다.

피 묻은 붕대와 의료 가방은 누군가 다쳐 응급 처치를 받았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시신도, 명백한 폭력의 흔적도, 외부 침입자의 자취도 없었다. 항해일지와 항해 장비가 함께 사라진 것은 누군가 의도를 갖고 배를 떠났음을 암시하지만, 정작 한쪽 엔진 위를 덮은 매트리스나 멈춘 시계는 그 떠남이 다급했음을 말한다. 25명—그중엔 어린이 두 명과 군의관도 있었다—이 어떻게, 어디로, 왜 사라졌는가. 이 단 하나의 의문에 70년 동안 누구도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가설

전설로 분리되는 초자연설

조이타호는 "가라앉을 수 없는 유령선"이라는 극적인 면모 때문에, 사람들을 통째로 삼킨 초자연적 힘이나 버뮤다 삼각지대류의 불가사의를 끌어들이는 이야기로도 소비됐다. 그러나 이는 검증 가능한 증거에 기반한 가설이 아니라 사건이 전설화되면서 덧붙은 서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 조사 기록은 어디까지나 기계적 결함과 인간의 판단 영역 안에서 사건을 다뤘다.

현재 상태 / 남은 의문

조이타호의 선체는 이후 회수돼 일부 다른 용도로 쓰였지만, 사라진 25명과 구명뗏목은 끝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한 명의 시신도, 한 척의 뗏목도 발견되지 않았다. 침수와 공황 속의 대피였을 가능성이 가장 자주 거론되지만, "가라앉지 않는 배를 왜 버렸는가"라는 근본 의문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조이타호는 기계적 사실은 비교적 분명히 밝혀졌으면서도 사람들의 운명만은 끝내 어둠 속에 묻힌, 드문 형태의 해양 미제로 기록된다.

출처

  1. MV Joyita — Wikipedia
  2. The Unsolved Disappearance of MV Joyita: Ghost Ship of the Pacific — Discovery UK
  3. MV Joyita: The Ghost Ship that Couldn't Sink — Historic Mysteries
  4. Exploration Mysteries: MV Joyita — Explorersweb
  5. Joyita — Unsolved Mystery — Atafu Tokelau Community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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