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 연쇄살인 사건
1986~1991년 경기도 화성에서 여성 10명이 살해된 한국 최악의 미제 연쇄살인은 33년간 진범을 찾지 못했다. 2019년, 30여 년 보존돼 온 증거물의 DNA가 한 무기수를 가리키며 사건은 마침내 진범에 도달했다 — 그러나 그를 처벌할 수는 없었다.
개요
이 사건은 두 가지 의미에서 한국 범죄사의 한 매듭이다. 첫째, 오랫동안 영원한 미제로 불리던 사건이 보존된 증거와 DNA 기술이라는 단 하나의 열쇠로 풀렸다는 점이다. 둘째, 진범이 밝혀지면서 같은 사건으로 20년을 복역했던 한 사람의 누명이 드러나, 강압 수사와 오심이라는 한국 과거사의 어두운 한 장이 함께 들춰졌다는 점이다.
이 문서는 자극적이거나 구체적인 가해 묘사를 배제하고, 사건의 규모와 해결의 전환점, 그리고 오심을 바로잡은 과정에 초점을 둔다. 실존하는 피해자와 유족이 있는 사건이므로, 확인된 사실에 한정해 서술한다.
배경
1980년대 후반의 화성군은 서울·수원과 가까우면서도 논밭과 야산이 펼쳐진 전형적인 도농 복합 지역이었다. 가로등이 드물고 인적이 끊긴 농로와 들녘이 많았고, 사건들은 주로 태안읍·정남면·팔탄면·동탄면 일대에 집중됐다. 비슷한 수법의 범행이 한 지역에서 반복되자 사회적 공포는 빠르게 번졌고, 사건은 곧 전국적 관심사가 됐다.
그럼에도 범인은 끝내 특정되지 않았다. 1991년 10번째 사건을 끝으로 범행은 멈췄고, 사건은 장기 미제로 가라앉았다. 이 미제 상태를 대중의 기억 속에 붙잡아 둔 것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이다. 극작가 김광림의 연극 〈날 보러와요〉를 바탕으로, 당시 미궁에 빠져 있던 이 사건을 소재로 삼은 이 영화는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범인을 끝내 잡지 못하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마지막 장면은, 아직 어딘가 살아 있을 범인을 향한 무언의 물음으로 읽혔다. 영화가 사건을 16년 동안 사회적 기억으로 살려둔 셈이다.
타임라인
- 1986-09-151차 사건 발생 (태안읍 안녕리) — 화성 연쇄살인의 시작
- 1986~19872~6차 사건 연속 발생 (태안읍·정남면 일대)
- 1988-097차·8차 사건 발생
- 1989-078차 사건 용의자로 윤성여 체포 — 이후 무기징역 확정 (훗날 누명으로 판명)
- 1990-11-159차 사건 발생 (태안읍 병점리)
- 1991-04-0310차 사건 발생 (동탄면 반송리) — 마지막 사건, 이후 범행 중단
- 1994-01이춘재, 청주에서 처제 살해 — 무기징역 확정, 수감
- 2003-04-25봉준호 감독 영화 〈살인의 추억〉 개봉 (당시 미제 상태)
- 2006-04-02마지막 사건 기준 공소시효(당시 살인죄 15년) 만료 — '영원한 미제'로
- 2019-07경기남부경찰청 미제수사팀, 보존 증거물의 DNA를 국과수에 재분석 의뢰
- 2019-09-18경찰, DNA 일치로 이춘재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고 공식 발표
- 2019-10-01~02이춘재, 화성 10건 포함 살인 14건과 성범죄 다수 자백
- 2020-07-02경기남부경찰청, 재수사 결과 발표 — 살인 14건 확인, 윤성여 등에게 공식 사과
- 2020-12-17수원지법, 8차 사건 재심에서 윤성여 무죄 선고 (32년 만)
- 2020-12-28경찰, 재수사 종결 —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분
확인된 사실
이춘재의 DNA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돼 있었던 것은 별개의 사건 때문이다. 그는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수감 중이었고, 2010년 시행된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정 범죄로 복역 중인 수형자의 DNA가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됐다. 즉 화성 사건의 진범은 1990년대부터 교도소 안에 있었지만, 그를 현장 증거와 연결할 방법이 2019년에야 갖춰진 것이다.
핵심 전환점 — DNA와 진범 특정
이 사건이 풀린 방식은 골든 스테이트 킬러 사건과 닮은 구조를 가진다. 단서가 없어서가 아니라, 가지고 있던 단서를 특정 인물과 연결할 기술과 데이터가 없어서 오래 미제로 남은 것이다.
전환의 출발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 국과수가 사건 현장 증거물을 30여 년간 폐기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었다. 둘째, 1986~1991년 당시에는 추출이 불가능했던 미량·열화 DNA를 복원·증폭하는 기술이 그사이 발전했다. 2019년 7월, 경기남부경찰청 미제수사팀은 보존된 증거물을 국과수에 재분석 의뢰했고, 9차 사건 증거물에서 확보한 DNA를 수형자 DNA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자 이춘재의 프로파일과 일치했다. 이어 5차·7차 사건 증거물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2019년 9월 18일, 경찰은 이춘재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처음에 부인하던 그는 DNA 증거를 제시받은 뒤 자백으로 돌아섰다. 여기서 짚어둘 점은, DNA 일치 자체가 유죄 판결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 중 조사할 한 사람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었고, 화성 사건의 경우 그 나침반이 가리킨 인물이 자백까지 함으로써 진범이 사실상 확정됐다.
이춘재가 현재 복역 중인 것은 오직 1994년 처제 살해 건 때문이다. 화성 사건을 비롯한 14건의 살인에 대해 그는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진범이 밝혀진 뒤, 지역민과 화성시의 요청에 따라 사건의 공식 명칭은 '화성 연쇄살인'에서 '이춘재 연쇄살인'으로 변경됐다. 지역에 덧씌워진 낙인을 거두고 책임을 가해자에게 되돌리려는 취지였다.
오심의 그늘 — 8차 사건과 재심
진범의 특정은 또 하나의 묻혀 있던 사실을 드러냈다. 화성 사건 가운데 8차 사건(1988년)으로 이미 한 사람이 유죄를 받고 20년을 복역한 뒤였다는 점이다. 그 사람이 윤성여다.
재심 법원은 당초의 유죄 판결을 떠받쳤던 두 축이 모두 무너졌다고 판단했다. 첫째는 자백이다. 법원은 윤성여의 자백이 불법 체포·구금과 가혹행위 속에서 나온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둘째는 감정 결과다. 당시 수사는 범행 현장 체모를 분석한 결과가 윤성여의 것과 같다는 국과수 감정서를 근거로 삼았으나, 이후 그 감정 과정에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진범 이춘재의 자백이 객관적 정황과 일치한 반면, 윤성여에게 씌워진 혐의는 그의 장애를 비롯한 여러 사정과 모순됐다.
무죄 이후 국가의 배상이 이어졌다. 윤성여는 부당하게 갇힌 기간에 대한 형사보상금을 받았고, 2022년에는 별도의 국가배상 소송에서 위법한 수사로 인한 손해를 인정받았다. 다만 당초 수사에 관여한 이들의 책임을 형사적으로 묻는 길은 막혀 있었다. 불법 체포·감금, 가혹행위,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다수의 관계자가 검찰에 넘겨졌으나, 이 역시 공소시효가 만료돼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현재 상태 / 남은 의미
이춘재는 부산교도소에서 1994년 처제 살해 건으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 그가 평생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는 그 한 건뿐이며, 화성 사건을 포함한 14건의 살인에 대해서는 끝내 어떤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이 사건을 다뤘던 봉준호 감독은 진범 특정 소식에 "굉장히 심란했다"며 복잡한 심경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 증거의 보존과 DNA 데이터베이스의 가치다. 30여 년간 폐기되지 않은 증거물과, 수형자의 DNA를 모아둔 제도가 없었다면 진범은 영영 이름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강압 수사와 오심의 위험이다. 자백에 의존한 수사가 어떻게 무고한 사람의 20년을 앗아갈 수 있는지를 윤성여 사건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셋째, 중대범죄 공소시효를 둘러싼 논쟁이다. 진범을 눈앞에 두고도 처벌하지 못한 이 사건은 시효 제도의 의미를 다시 묻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결국 해결된 사건이다. 그러나 그 해결은 자백이나 처벌의 승리가 아니라, 시간이 지워버린 가능성과 제도가 만든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사건이다. 보존된 증거가 진범을 가리켰지만 법은 그를 단죄하지 못했고, 그 진범의 자백이 비로소 한 무고한 사람의 누명을 벗겼다. 미제사건이 시간이 아니라 방법의 문제일 수 있음을, 그리고 잘못된 수사가 남긴 상처는 아주 늦게야 회복될 수 있음을 이 사건은 함께 보여준다.
출처
-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 — 위키백과(한국어)
- Lee Choon-jae — Wikipedia (English)
- Hwaseong murders: Korea's most infamous cold case solved after 33 years — The Korea Herald
- 이춘재 연쇄살인 재수사 종결…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없음' — 경향신문
- 살인의 추억 — 위키백과(한국어)
- 이춘재 연쇄살인 보도 모음 — SBS 뉴스 이슈
- South Korea's most-notorious serial killing cold case now exposes huge injustices — CNN
- South Korean man cleared of Hwaseong teenager's killing after 20 years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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