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블 존
1968~1969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배로랜드 무도장에서 만난 젊은 여성 세 명이 잇따라 살해됐다.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는 목격담에서 비롯된 별명만 남긴 채, 대규모 수사에도 범인은 끝내 특정되지 않았다.
개요
이 사건은 단순한 미제 살인을 넘어, 반세기 넘게 스코틀랜드 대중문화 속에서 하나의 '전설'처럼 다뤄져 왔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실제로 목숨을 잃은 세 여성의 삶은 종종 가려졌다. 이 기록은 확인된 사실을 우선하고, 추정과 가설은 분명히 구분해 정리한다.
배경 — 배로랜드 무도장
배로랜드는 글래스고 동부 게일게이트(Gallowgate)에 자리한 대형 무도장으로, 1960년대 글래스고 노동계급의 대표적인 여가 공간이었다. 특히 일부 요일에는 '25세 이상(Over-25s)'을 위한 밤이 열려, 기혼자나 연상의 남녀가 어울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세 피해자는 모두 이 무도장에서 시간을 보낸 뒤 살해됐고, 이 공통점이 세 사건을 하나로 묶는 출발점이 됐다.
당시 글래스고는 산업 쇠퇴와 함께 좁은 골목과 허물어져 가는 공동주택(tenement)이 뒤섞인 도시였다. 세 사건 모두 피해자의 집 근처, 인적이 끊긴 골목이나 빈 건물 일대에서 시신이 발견됐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세 피해자는 결코 '익명의 희생자'가 아니라, 저마다 분명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퍼트리샤 도크는 25세의 간호 보조원이었고, 사건 당일 본래 다른 무도장에 가려 했다가 인근의 배로랜드로 옮겨 간 것으로 추정된다. 제미마 맥도널드는 31세로 세 자녀를 둔 어머니였으며, 그의 시신은 빈 공동주택 건물에서 친언니가 직접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헬렌 퍽톡은 29세로, 사건 당일 동생 진과 함께 밤 외출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타임라인
- 1968-02-22퍼트리샤 도크(25세, 간호 보조원)가 외출. 본래 머제스틱 무도장에 갔다가 인근 배로랜드로 옮겨 간 것으로 추정.
- 1968-02-23퍼트리샤 도크의 시신이 배틀필드 지구 카마이클 플레이스 뒤편 골목에서 나체로 발견됨. 강한 끈으로 교살.
- 1969-08-16제미마 맥도널드(31세, 세 자녀의 어머니)가 배로랜드에서 밤을 보냄. 이후 브리지턴의 빈 공동주택 건물에서 시신으로 발견됨.
- 1969-10-31헬렌 퍽톡(29세)이 동생 진과 함께 배로랜드를 찾음. 이튿날 아침 스코츠턴 지구 자택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됨.
- 1969-11헬렌의 동생 진의 진술을 토대로 한 범인 몽타주가 공개되고 대규모 수사가 본격화됨.
- 1996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던 존 어바인 맥키니스의 시신이 DNA 대조를 위해 발굴됨.
- 2022BBC 팟캐스트가 세 피해자의 삶과 수사 과정을 재조명하며 사건을 다시 공론화함.
몽타주와 단서
세 사건 중 범인의 인상을 비교적 길게 관찰한 유일한 목격자는 세 번째 피해자 헬렌 퍽톡의 동생, 진(Jean)이었다. 그날 밤 자매는 배로랜드에서 만난 두 남자와 어울렸고, 그중 한 명과 택시를 함께 탔다. 진은 이 택시 안에서 약 20분 동안 범인과 같은 공간에 있었다.
진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단정한 차림의 젊은 남성이었다. 머리는 불그스름하거나 모래빛이 도는 금발 계열로, 뒤를 가지런히 다듬은 모양이었다고 한다. 나이는 20대 중후반, 키는 대략 178~183센티미터 안팎으로 묘사됐다. 잘 재단된 갈색 양복을 입었고, 앞니가 겹쳐 있으며 위쪽 어금니 하나가 빠져 있었다는 치아 특징도 언급됐다. 이 묘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몽타주 — 불그스름한 머리에 단정한 양복 차림의 청년 — 는 이후 사건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진은 또한 그날 밤 자매가 두 명의 남자와 어울렸으며, 그중 한 명은 도중에 먼저 자리를 떴고 나머지 한 명과 택시를 함께 탔다고 진술했다. 다만 이 모든 묘사는 한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사 초기부터 한계가 분명했다. 직접적이고 비교적 긴 시간 관찰한 목격자가 사실상 진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수사와 DNA
세 사건이 연결되자 글래스고 경찰은 대규모 수사에 나섰다. 다수의 형사가 전담 배치됐고, 수만 건의 탐문 진술이 수집됐으며, 수천 명에 이르는 잠재적 용의자가 조사 대상에 올랐다. 목격자 진은 수백 차례의 신원 확인 절차에 참여했고, 사복 경찰이 배로랜드에 잠입해 감시를 벌이기도 했다. 범인의 치아 특징을 단서로 글래스고의 치과 기록과 이발소까지 훑는 등,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광범위한 수사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결정적 신원 확인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 수사는 규모 면에서 스코틀랜드 범죄사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추적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1960년대 말의 수사 기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오늘날의 표준이 된 DNA 분석은 존재하지 않았고, 폐쇄회로 카메라 같은 기록 장치도 사실상 없었다. 결국 수사는 목격자의 기억과 방대한 탐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 구조적 한계가 사건이 미제로 남게 된 배경 중 하나로 지적된다. 무도장 감시 역시 별다른 단서를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종료됐다.
핵심 의문
이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의문은 과연 세 살인이 동일범의 소행인가라는 점이다. 세 사건은 배로랜드라는 공통점과 유사한 살해 방식으로 묶였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살인 사이에는 약 1년 6개월의 공백이 있다. 일부에서는 이 긴 간격을 두고, 동일범이 오랜 휴지기를 가졌을 가능성, 서로 다른 가해자가 있었을 가능성, 혹은 모방 범죄가 섞였을 가능성을 함께 제기한다.
또한 세 사건을 처음부터 하나로 묶은 수사 방향 자체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비판도 있다. 사건을 성급하게 단일 연쇄살인으로 규정하면서, 개별 사건이 가질 수 있던 다른 단서가 가려졌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바이블 존'이라는 단일한 범인상이 실재했는지조차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 난점이다.
가설
현재 상태 / 출처
바이블 존 사건은 발생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공식적으로 미해결 상태이며, 수사 기록은 닫히지 않았다. 2022년 언론인 오드리 길런이 진행한 BBC 팟캐스트 시리즈는 세 피해자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며 사건을 재조명했고, 이 방송이 제기한 일부 주장에 대해 경찰이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다만 새로운 단서가 사건의 실체적 진실로 이어졌다는 확인은 없다. 택시 안에서 범인과 가장 오래 마주했던 목격자 진은 2010년 세상을 떠났고, 그가 기억하던 세부 묘사도 함께 사라졌다. 무엇보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퍼트리샤 도크, 제미마 맥도널드, 헬렌 퍽톡 — 일상을 살아가던 세 여성이 있다는 사실이, 별명의 그림자에 묻히지 않아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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