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푸의 수수께끼는 두 층위로 나뉜다. 하나는 숫자다. 키푸 상당수는 십진 자릿값 체계로 수를 적었고, 이 부분은 20세기 초에 원리가 밝혀졌다. 다른 하나는 서사다. 식민 초기 스페인 기록은 잉카인이 키푸로 역사·계보·노래·신화 같은 이야기까지 보존했다고 증언하는데, 이런 '비(非)숫자' 키푸를 실제로 읽어내는 방법은 오늘날까지도 대체로 확립되지 않았다. 그래서 키푸는 '완전히 풀린 고대 문자'도, '전혀 못 읽는 암호'도 아닌, 절반은 해독되고 절반은 미해독인 독특한 사례로 남아 있다.
배경 — 안데스 행정과 키푸
키푸카마요크는 세습직이었고, 끈에 담긴 수치를 풀어내는 동시에 그 키푸에 딸린 구술 설명을 함께 외워 전했다. 즉 키푸 자체가 모든 의미를 자족적으로 담았다기보다, 끈(저장)과 사람의 기억(낭독)이 한 쌍으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은 뒤에서 '키푸가 문자인가'를 따질 때 중요한 쟁점이 된다.
타임라인
600~1000경
와리 제국 시기, 학계가 인정하는 가장 이른 명백한 키푸 등장
1438~1533
잉카 제국이 키푸를 행정·회계의 핵심 도구로 광범위하게 사용
1533
에르난도 피사로가 키푸 사용을 목격한 최초의 스페인 기록을 남김
1583
제3차 리마 공의회가 키푸를 '우상숭배의 물건'으로 규정, 소각을 명령
1912~1923
리랜드 로크가 십진 자릿값 매듭 체계를 입증(1923년 단행본)
1960년대 후반~
마샤·로버트 애셔 부부가 수백 점을 분석, 다수가 수치 기록임을 확인
2002~
게리 어튼·캐리 브레진, 하버드 키푸 데이터베이스 프로젝트 시작
2017
사빈 하일랜드, 콜라타 키푸를 음성·표어 기록으로 보는 연구 발표
2018
메드라노·어튼, 산타 계곡 키푸 6점을 1670년 식민 인구조사 문서와 대조
구조 / 해독 현황 — 숫자는 풀렸다
문제는 나머지다. 어튼의 2003년 추정으로 약 600점, 2021년 한 조사로는 1,400점 가까이가 현존하는데, 그중 약 3분의 2가 십진 회계형이고 나머지 약 3분의 1은 자릿값 위계를 따르지 않는 '비십진·서사·변칙' 키푸로 분류된다. 색·섬유 종류·꼬임 방향·매듭 형태 같은 특징이 아직 해독되지 않은 비(非)숫자 정보 체계를 이루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부분을 일관되게 읽는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핵심 의문 — 키푸는 '문자'인가
쟁점이 까다로운 이유는 검증의 어려움 때문이다. 키푸를 읽던 키푸카마요크는 식민 통치 속에서 사라졌고, 끈과 짝을 이루던 구술 설명도 함께 끊겼다. 로제타석처럼 '같은 내용을 키푸와 알파벳 양쪽으로 적은' 명확한 대조 자료가 거의 없어, 후보 해독이 나와도 독립적으로 검증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서사 키푸는 '담겼다는 증언'은 풍부하나 '읽는 법'은 비어 있는 상태다.
가설
현재 상태 — 데이터베이스와 최근 연구
데이터가 공개되면서 연구는 계산·데이터과학으로 옮겨가고 있다. 끈 부착 방향과 사회 위계의 상관(피츠패트릭, 2024), 데이터과학이 키푸 해독에 기여할 길(메드라노 등, 2024) 같은 후속 연구가 이어지고, '키푸 필드 가이드' 같은 개방형 데이터 작업이 신규 연구자의 진입을 돕고 있다. 그럼에도 키푸 기록 체계 전반은 여전히 미해독이라는 것이 저장소 측의 공식 입장이다. 한편 투피코차·산크리스토발 데 라파스 같은 페루 마을에서는 키푸가 의례용 유산으로 지금도 보존되지만, 현대 공동체도 그 부호를 온전히 읽지는 못한다.
정리하면, 잉카 키푸는 '숫자'라는 한쪽 문은 활짝 열렸고 '서사'라는 다른 쪽 문은 아직 빗장이 걸린 사례다. 외계나 잃어버린 초문명이 아니라, 키푸를 읽던 사람들의 단절과 검증용 대조 자료의 부재가 미해독의 핵심 이유다. 색과 매듭 속에 잉카의 역사와 노래가 정말 담겼는지, 담겼다면 어떻게 풀어 읽는지는 데이터베이스와 새 세대 연구자에게 넘겨진 안데스 고고학의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