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문자 A
청동기 미노아 문명이 기원전 약 1800~1450년에 사용한 미해독 문자. 후대의 선문자 B는 1952년 미케네 그리스어로 해독됐지만, 같은 음절 기호를 다수 공유하는 선문자 A는 그 음가를 대입해도 알려진 어떤 언어로도 풀리지 않는다. 바탕이 된 '미노아어'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개요
선문자 A의 곤란함은 단순히 '아직 못 풀었다'는 데 있지 않다. 이 문자는 음절 기호의 음가를 상당 부분 추정할 수 있는데도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는, 보기 드문 상황에 놓여 있다. 후대에 등장한 선문자 B(Linear B)는 1952년에 미케네 그리스어를 적은 문자로 해독됐고, 선문자 A는 그 선문자 B와 음절 기호를 다수 공유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선문자 A 기호를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다. 문제는 그렇게 읽어 낸 소리가 알려진 어떤 언어로도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탕이 된 언어, 이른바 '미노아어(Minoan)'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발견 — 에번스와 크노소스
선문자 A는 미노아 궁전 복합체의 행정·회계 문서에 주로 쓰였다. 점토판과 인장 등에는 곡물·가축·도기·직물 같은 물품의 거래 내역과 인명 목록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현존 텍스트의 대부분은 짧은 장부와 목록이며, 문장다운 문장이나 이야기 형태의 글은 거의 없다. 이 점은 뒤에서 보듯 해독을 가로막는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다.
현존하는 선문자 A 명문은 약 1,400점으로, 기호 토큰 수로는 약 7,400개에 이른다. 출토지는 크레타 전역에 걸쳐 있는데, 그 절반에 가까운 양이 남부 해안의 하기아 트리아다(Hagia Triada) 한 곳에서 나왔고, 그밖에 자크로스·하니아 등 궁전과 성소, 외딴 별장에서도 발견됐다. 크레타 바깥으로는 테라(산토리니), 키클라데스 제도, 로도스, 심지어 이스라엘의 한 유적에 이르기까지 교역을 통해 퍼진 흔적이 보고됐다.
타임라인
- 기원전 1800년경선문자 A 사용 시작(미노아 중기). 크레타 궁전 행정에 쓰임
- 기원전 1450년경선문자 A 사용 쇠퇴. 이후 크레타에서 선문자 B가 대체
- 1900아서 에번스가 크노소스 발굴 착수, 선형 문자를 발견하고 'Linear A/B'로 명명
- 1952마이클 벤트리스가 선문자 B를 미케네 그리스어로 해독
- 1953벤트리스와 존 채드윅이 선문자 B 해독을 학술지에 공식 발표
- 1958선문자 A '헌주 정형구'에 신명이 담겼다는 해석 등장(팔머·플라톤)
- 1961헌주 정형구의 신명 해석에 반론 제기(포프)
- 2020년대컴퓨터·통계 분석이 시도되나 합의된 해독은 여전히 없음
선문자 B는 풀렸는데 (대비)
벤트리스의 성공은 사실상 통계 분석의 승리였다. 그는 기호들의 출현 빈도와 배열 양상을 분석해 어느 기호가 어떤 음절일지를 좁혀 나갔고, 19세기에 이미 해독되어 있던 키프로스 음절문자(Cypriot syllabary)와 비교해 일부 기호의 음가를 추정하는 단서를 얻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그가 세운 음가가 그리스어라는 알려진 언어로 의미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벤트리스는 곧 케임브리지의 젊은 언어학자 존 채드윅(John Chadwick)과 손잡았고, 두 사람은 1953년 해독 결과를 정식 논문으로 발표했다.
왜 안 풀리나 — 미노아어의 벽
여기에 더해 자료 자체의 한계가 겹친다. 선문자 B는 약 6,000점의 명문이 남아 통계 분석이 가능했지만, 선문자 A는 현존 텍스트가 1,400여 점에 그치고 그나마 대부분이 짧은 행정 목록이다. 표본이 작고 단편적이면 구조 분석만으로는 규칙을 끌어내기 어렵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이중언어 비문(bilingual inscription)의 부재다. 같은 내용을 미노아어와 이미 해독된 언어로 나란히 적은 '로제타석' 같은 자료가 없기 때문에, 미지의 언어를 알려진 언어에 묶어 줄 다리가 없다.
해독 시도들
현재 상태 / 출처
선문자 B가 풀린 1952년 이후, 많은 사람은 그 선조 격인 선문자 A의 해독도 머지않았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7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선문자 A는 침묵하고 있다. 자물쇠를 여는 열쇠의 모양은 어느 정도 알지만, 그 열쇠가 열어야 할 문 너머의 언어를 잃어버린 까닭이다. 이중언어 비문이 새로 발굴되거나 미노아어의 계통을 확정할 단서가 나오기 전까지, 미노아인이 점토에 적어 둔 장부의 내용은 끝내 우리에게 닫혀 있을지 모른다. 아래는 본 문서가 참고한 출처다.
Related · 관련 기록

파이스토스 원반
1908년 크레타섬 파이스토스 궁전에서 발견된 미노아 청동기 시대의 구운 점토 원반. 양면에 나선형으로 찍은 241개의 인장 기호(45종)가 새겨져 있으나 문자 체계도 언어도 미해독이며, 표본이 이 하나뿐이고 텍스트가 짧아 해독이 사실상 불가능한 고고학 최대의 수수께끼다.

카스카할 석판
멕시코 베라크루스의 채석장 잡석 더미에서 발견된 사문암 석판으로, 62개의 새김 기호가 28종의 서로 다른 부호로 이루어져 있다. 발견자들과 다수 학자는 이를 기원전 900년경 올멕 문명의 글로 보아 아메리카 대륙 최고(最古)의 문자 기록이라 평가하지만, 출토 정황이 불확실하고 문자 배열이 다른 메소아메리카 문자와 다르다는 이유로 진위·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진다. 기호는 지금까지 해독되지 않았다.

키프로-미노아 문자
청동기 시대 키프로스에서 약 기원전 1550~1050년에 쓰인 미해독 음절문자. 크레타의 선문자 A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며, 약 250점의 유물에 새겨진 4,000여 개의 부호가 남아 있으나 표기 언어조차 알 수 없어 거의 판독되지 않는다. CM1·CM2·CM3로 나뉘어 왔지만 이 구분 자체가 최근 도전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