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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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해결미제사건

이태원 살인사건

1997년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이 흉기에 찔려 숨졌고, 현장의 두 청년이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진범 특정 실패로 장기 미제가 됐다가 18년 만에 한 명의 유죄가 확정됐다.

1997년대한민국 서울 이태원8분 분량

개요

이 사건은 단순한 강력범죄를 넘어, 수사·기소·출국 관리의 허점이 어떻게 한 가족의 진실을 18년 동안 미뤄 놓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두 명의 청년 중 한 명은 반드시 범인이었지만, 법정은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살인의 책임을 묻지 못했다.

배경 — 1997년 그날

조중필은 홍익대학교 전파공학과에 다니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사건 당일 밤 그는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잭나이프로 목과 가슴 등 여러 군데를 찔렸다. 그는 화장실 바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 함께 있던 두 사람은 모두 미국 국적의 교포 청년이었다. 한 명은 아서 존 패터슨(당시 만 17세), 다른 한 명은 에드워드 건 리(한국명 이학수, 당시 만 18세)였다. 두 사람은 모두 1979년생으로, 사건 당시 미성년이거나 막 성년에 접어든 나이였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깊은 원한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좁은 화장실에서 단시간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 이후 수사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됐다.

1990년대 이태원은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번화가였고, 사건이 벌어진 화장실은 좁고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피해자가 목과 가슴 등 여러 군데를 잭나이프에 찔렸다는 사실은 명백했지만, 그 한정된 공간에서 누가 실제로 칼을 쥐고 있었는가를 외부 목격으로 가릴 수는 없었다. 결국 사건의 진실은 그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의 진술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타임라인

  1. 1997-04-03
    이태원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조중필이 흉기에 찔려 사망
  2. 1997-04-04
    아서 패터슨 체포
  3. 1997-04-08
    에드워드 리, 관련 진술 — 두 사람이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
  4. 1998
    검찰, 에드워드 리를 살인죄로 / 패터슨을 증거인멸·흉기소지 등으로 기소
  5. 1998-09-30
    서울고등법원, 에드워드 리에게 무죄 선고
  6. 1999-08-23
    출국정지 연장 실수로 패터슨 미국 출국(사실상 도주)
  7. 1999-09-03
    대법원, 검찰 상고 기각 — 에드워드 리 무죄 확정
  8. 2009-09-09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개봉, 사건 재조명
  9. 2011-06
    미국에서 패터슨 체포, 같은 해 살인죄로 기소·송환 추진
  10. 2015-09-23
    패터슨 한국으로 송환
  11. 2016-01-29
    1심, 패터슨에게 징역 20년 선고
  12. 2016-09-13
    항소심, 1심 판결 유지
  13. 2017-01-25
    대법원, 징역 20년 확정

두 용의자와 수사 혼선

사건 직후 패터슨이 먼저 체포됐고, 며칠 뒤 에드워드 리도 수사 선상에 올랐다. 핵심 문제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좁은 화장실에 있던 두 사람 중 한 명은 직접 흉기를 휘둘렀고, 다른 한 명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결같이 "찌른 것은 상대방"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엇갈렸다. 검찰은 에드워드 리를 살인죄로, 패터슨은 증거인멸과 흉기소지 등 비교적 가벼운 혐의로 기소했다. 즉, 실제로 칼을 휘두른 사람은 리이고 패터슨은 이를 도왔다는 구도였다.

문제는 그 사이에 더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패터슨에 대한 출국정지 조치가 담당 검사의 실수로 연장되지 못했고, 1999년 8월 패터슨은 미국으로 출국해 버렸다. 살인의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 법망 바깥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같은 해 9월 대법원이 에드워드 리의 무죄를 확정하면서, 두 명 중 누구에게도 살인의 책임을 묻지 못하는 상황이 굳어졌다. 직접 흉기를 휘두른 사람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법정에서는 그 한 사람을 가려내지 못한 채 사건이 사실상 멈춰 섰다.

핵심 의문 — 왜 미궁이 됐나

이 사건이 오랫동안 '부분 미제'로 남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증거의 한계다. 두 사람이 서로를 지목하는 상황에서, 누가 직접 흉기를 휘둘렀는지를 가릴 물증이 충분치 않았다. 그 결과 살인죄로 기소된 에드워드 리는 무죄를 받았고, 정작 다른 한 명에게는 살인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둘째는 행정·수사상의 실책이다. 출국정지 연장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패터슨이 미국으로 나간 일은, 이후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한국 사법이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으로 빠져나간 용의자를 다시 데려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송환에는 국가 간 범죄인 인도 절차가 필요했고, 이는 수년에 걸친 외교·법적 과정을 동반했다. 한 번의 행정적 빈틈이 사건의 해결을 십수 년 뒤로 미룬 셈이다.

이 두 요인은 서로 맞물려 있었다. 증거가 약해 한 명이 무죄를 받은 상황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다른 한 명마저 국외로 빠져나가자 사건은 한동안 어느 쪽으로도 진전되지 못했다. 여론이 이 사건을 '잊혀진 미제'로 기억하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해결 — 송환과 2016 유죄 확정

오래 잠들어 있던 사건은 2009년 9월 개봉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을 계기로 다시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여론이 환기되면서 검찰은 사건을 다시 들여다봤고, 미국에 있는 패터슨의 송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2011년 6월 패터슨은 미국에서 체포됐고, 같은 해 한국 검찰은 그를 살인죄로 기소하며 송환 절차를 밟았다. 미국 측은 패터슨이 살인의 범인이라는 점을 가리키는 정황이 있다고 보았다. 길고 복잡한 송환 절차 끝에, 2015년 9월 23일 패터슨은 마침내 한국으로 송환됐다. 미국에서의 체포부터 실제 송환까지 약 4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국외로 빠져나간 용의자를 다시 법정에 세우는 일이 얼마나 더딘 과정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6년 9월 13일 항소심은 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고, 2017년 1월 25일 대법원은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약 20년, 패터슨이 미국으로 출국한 지 약 18년 만에 살인에 대한 사법적 결론이 내려졌다. 한때 살인죄로 기소됐다가 무죄가 확정된 에드워드 리의 사건과 달리, 재수사 단계에서 다시 정리된 증거와 정황은 법원이 패터슨의 책임을 인정하는 근거가 됐다.

이 사건은 '진범을 끝내 가리지 못한 미제'에서 '한 명의 유죄가 확정된 부분 해결'로 매듭지어진 드문 사례다. 다만 18년이라는 세월과 한 차례의 도주, 그리고 행정 실책이 끼어든 과정은, 결론이 내려진 뒤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무게로 남았다.

남은 의문 / 출처

법적으로 이 사건의 살인 책임은 패터슨에게 확정됐다. 그러나 사건 직후 두 사람이 서로를 지목하던 시기에 왜 진범을 신속히 특정하지 못했는지, 출국정지 연장이 어떻게 누락됐는지 같은 절차상의 문제는 여전히 한국 형사사법 절차의 교훈으로 회자된다. 무엇보다 한 청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가려지기까지 그 가족이 견뎌야 했던 시간은, 어떤 판결로도 온전히 되돌릴 수 없는 부분으로 남았다.

이 문서는 확정판결과 공개된 보도, 백과사전 기록에 근거한 정리이며, 수사 초기의 세부 정황 일부는 자료마다 표현이 다를 수 있다.

  1.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 — 위키백과
  2. Itaewon murder case — Wikipedia
  3. 대법원, '이태원 살인' 패터슨 징역 20년 확정 — 법률신문
  4. South Korea court jails American for 20 years for Burger King murder — AFP/Yah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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