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카스 칸델라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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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음모론

파라카스 칸델라브라

페루 파라카스 반도의 해안 절벽에 깊이 새겨진 180m 높이의 거대한 삼지창. 바다에서 19km 밖까지 보이는 이 촛대 모양 지상화를 누가, 왜 새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항해 표지에서 비라코차의 번개창까지 가설은 무성하지만, 제작자조차 확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기원전 200년경 추정페루 파라카스 반도9분 분량

개요

파라카스 칸델라브라의 미스터리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누가, 무엇을 위해 새겼는가. 부근 토기가 파라카스 문화의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정작 그 문화가 이 그림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확정된 적이 없다. 항해 표지설, 비라코차 신앙설, 18세기 메이슨·독립군 기원설, 그리고 환각 식물설과 외계 기원설까지—저마다 다른 시대와 다른 목적을 가리키는 가설들이 빈 공백을 메우려 경쟁한다.

배경 — 파라카스 문화와 반도

파라카스 반도는 리마에서 남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해안 사막 지대로, 강한 모래바람('파라코'라는 지명 자체가 '모래비'를 뜻한다는 해석이 있다)과 극도의 건조함으로 유명하다. 역설적으로 이 혹독한 기후가 그림을 오래 보존해 주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파낸 홈 둘레의 흙이 소금기와 미네랄로 단단히 굳으면서 침식에 저항했다는 설명이 있다.

이름의 바탕이 된 파라카스 문화는 대략 기원전 800~기원전 100년에 페루 남부 해안 잇카 지역과 파라카스 반도 일대에서 번성한 안데스 토착 문화다. 정교한 직물과 색실 자수, 두개골 변형 풍습, 그리고 '파라카스 네크로폴리스'로 불리는 대규모 미라 매장지로 잘 알려져 있다. 페루 고고학자 훌리오 텔로가 1920년대에 이 문화를 학문적으로 규명했다. 파라카스 문화는 뒤이은 나스카 문화의 선행 문화로 평가되며, 나스카 라인 일부 초기 형상도 파라카스인의 작품으로 본다. 칸델라브라가 흔히 "나스카 라인과 관련 있다"고 묘사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만 토기의 연대가 곧 그림의 연대는 아니다. 토기는 그림 주변에 있던 것일 뿐, 그것을 남긴 사람들이 그림까지 새겼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이 한 줄의 단서와 한 줄의 유보가 파라카스 칸델라브라를 둘러싼 모든 논쟁의 출발점이다.

타임라인

  1. 기원전 800~기원전 100년경
    파라카스 문화가 페루 남부 해안에서 번성
  2. 기원전 200년경
    지상화 부근 토기의 방사성탄소 연대(제작자 연관은 미확정)
  3. 16~18세기
    스페인령 해안 항로의 기항지·표지로 활용됐다는 구전
  4. 1820~1821년경
    산 마르틴 독립군·메이슨 기원설이 가리키는 시기(연대상 토기와 충돌)
  5. 1920년대
    훌리오 텔로가 파라카스 문화를 학문적으로 규명
  6. 20세기 중반
    고고학자 마리아 라이헤가 부근에서 파라카스 양식 토기 파편을 수습·연대 추정
  7. 20세기
    토니 모리슨 등 연구자들이 현지인 증언을 통해 '항해 신호' 전승 기록
  8. 2016
    페루 정부가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 훼손 시 처벌 규정 적용

지상화 / 증거

연대 측정의 핵심 근거는 부근 토기다. 독일 출신 페루 고고학자 마리아 라이헤가 인근에서 파라카스 양식 토기 조각을 발견해 기원전 200년경으로 추정했다. 이 연대가 나스카 라인을 만든 문화권과 칸델라브라를 시간적으로 잇는 다리가 된다.

하지만 결정적 한계가 있다. 지상화 자체에서 직접 연대를 측정할 재료가 나오지 않았다. 흙을 파낸 음각 지상화는 유기물이 거의 남지 않아, 그림 자체의 절대연대를 확정하기 어렵다. 부근 토기는 "이 자리에 파라카스인이 있었다"는 정황 증거일 뿐, "파라카스인이 이 그림을 새겼다"는 직접 증거가 아니다. 이 때문에 일부 연구자는 그림이 토기보다 훨씬 오래됐다고 보고, 정반대로 일부는 식민지 시대(16세기 이후)의 작품이라고 본다. 학계의 공식 입장은 "제작자 미확정"에 머물러 있다.

핵심 의문

세 가지 질문이 얽혀 있다. 첫째, 누가 만들었는가—파라카스 문화인가, 나스카인가, 아니면 식민지 시대 이후의 누군가인가. 둘째, 언제 만들었는가—기원전 200년경인가, 그보다 오래됐는가, 아니면 불과 200여 년 전인가. 셋째,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가—바다를 향한 실용적 표지였는가, 신을 향한 종교적 상징이었는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

특히 형상이 바다 쪽을 향해, 바다에서 가장 잘 보이도록 배치됐다는 점이 모든 해석의 분기점이다. 이는 항해자를 위한 표지였다는 가설을 강하게 시사하지만, 동시에 바다 너머에서 돌아오는 신을 맞이하는 종교적 방향성으로도 읽힌다.

가설

현재 상태

오늘날 칸델라브라는 파라카스 국립자연보호구역과 가까운 해상 관광 항로의 명소로, 바예스타스 제도로 향하는 보트에서 가장 잘 보인다. 2016년 국가문화유산 지정 이후 훼손 행위에는 페루법에 따른 형사 처벌이 적용된다. 인접한 나스카 라인이 '누가 만들었나'는 풀렸으되 '왜 만들었나'가 남은 미스터리라면, 파라카스 칸델라브라는 그보다 한 단계 앞선 질문—'누가, 언제 만들었나'조차 아직 열려 있는 지상화로 남아 있다.

출처

  1. Paracas Candelabra — Wikipedia
  2. The mysterious prehistoric geoglyph of the Paracas Candelabra — Ancient Origins
  3. Paracas Candelabra of Peru — Amusing Planet
  4. The Paracas Candelabra: Desert Beacon or Ancient Enigma? — Discovery UK
  5. Paracas cultur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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