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코·모리나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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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미제사건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사장을 납치하고 청산가리 과자로 일본 열도를 떨게 한 정체불명의 협박범 '괴인 21면상'. 경찰 130만 명을 조롱하며 단 한 명도 잡히지 않은 채 2000년 공소시효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1984~1985년일본 (오사카·간사이)11분 분량

개요

일본 범죄사에서 글리코·모리나가 사건만큼 기묘한 사건은 드물다. 사람을 납치하고 독극물을 식품에 섞겠다 위협했지만 끝내 아무도 죽지 않았고, 거액을 요구했지만 단 한 푼도 손에 넣지 못했다. 대신 범인은 경찰과 언론에 직접 편지—이른바 '도전장'—를 보내 수사를 조롱하고, 단서를 흘리는 듯 약 올리며, 한 시대의 일본을 공포와 혼란에 빠뜨렸다.

이 사건이 '미제(未濟)의 상징'으로 남은 이유는 단순히 범인을 못 잡아서가 아니다. 연인원 130만 명의 경찰을 투입하고도, 범인의 목소리·필적·몽타주·차량·도주 경로까지 상당 부분 파악하고도 정체에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서는 확인된 사실과 끝내 풀리지 않은 의문,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려는 여러 가설을 구분해 정리한다.

배경

1980년대 일본은 고도성장의 정점에서 거품경제로 향하던 풍요의 시기였다. 동시에 대중 소비문화와 매스미디어가 폭발적으로 성장해, 한 기업을 겨냥한 협박이 곧바로 전국적 뉴스가 되어 소비자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회이기도 했다. 범인은 바로 이 구조—'독극물 혼입설'만으로도 기업이 막대한 매출 손실과 주가 하락을 입는다는 점—를 정확히 노렸다.

표적이 된 에자키 글리코는 1922년 창업한 일본의 대표적 제과 기업으로, 캐러멜과 과자로 국민적 인지도를 가진 회사였다. 두 번째 표적인 모리나가 제과 역시 유제품·과자로 유명한 노포였다. 범인은 글리코를 시작으로 모리나가, 마루다이햄, 하우스식품, 후지야 등 식품 기업으로 표적을 넓혀 갔다.

타임라인

  1. 1984-03-18
    에자키 글리코 사장 에자키 가쓰히사, 효고현 니시노미야 자택에서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됨. 현금 10억 엔·금괴 100kg 요구
  2. 1984-03-21
    에자키 사장,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감금 창고에서 스스로 탈출
  3. 1984-04-08
    '괴인 21면상' 명의의 첫 도전장 — 경찰을 조롱하는 내용
  4. 1984-04-10
    글리코 본사 주차장 차량 방화 등 위협 행위
  5. 1984-05-10
    글리코 제품에 청산소다를 탔다는 협박장 발송
  6. 1984-06-26
    '글리코를 용서한다'는 종전 선언 — 표적을 다른 기업으로 전환
  7. 1984-09~10
    모리나가로 표적 이동. 청산소다 든 과자를 간사이·나고야 등지 매장에 살포(경고문 부착)
  8. 1984-11-14
    하우스식품 몸값 전달 작전(시가현 오쓰 인근) — '여우 눈의 남자' 포착되나 검거 실패
  9. 1985-01
    경찰, '여우 눈의 남자' 몽타주 공개
  10. 1985-08-07
    시가현 경찰 야마모토 쇼지 본부장(서장급), 수사 실패에 책임을 느껴 분신자살
  11. 1985-08-12
    '괴인 21면상'의 마지막 성명 발표 후 범행 종료, 잠적
  12. 1994-2000
    납치(1994)·살인미수·협박 등 혐의 공소시효 순차 만료, 2000년 2월 최종 종결

사건 경과 / 확인된 사실

사장 납치와 탈출

청산가리 과자와 협박

납치가 실패로 끝난 뒤 범인의 전략은 더 교묘해졌다. 글리코 제품에 청산소다를 탔다고 협박한 뒤, 표적을 모리나가로 옮겨 실제로 독극물이 든 과자를 만들어 매장에 두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협박의 경제적 타격은 막대했다. 매장들은 글리코·모리나가 제품을 일제히 회수했고, 모리나가는 한때 생산을 대폭 축소해야 했다. 글리코는 수백 명 규모의 임시직 해고와 수천만 달러 상당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도전장과 조롱

'여우 눈의 남자'와 몸값 전달 작전

범인은 여러 차례 몸값 전달을 지시했고, 경찰은 매번 잠복했지만 번번이 놓쳤다. 1984년 11월 시가현 오쓰 인근 메이신 고속도로 휴게소 일대에서의 하우스식품 작전 때, 현장에서 헤드폰을 쓰고 경찰 무선을 도청하던 정체불명의 남성이 포착됐다.

또 하나 기괴한 단서는 협박 전화에 쓰인 목소리였다. 범인은 직접 말하지 않고, 어린아이부터 10대로 추정되는 다양한 연령대의 녹음 음성을 재생했다. 그중에는 10세 미만으로 들리는 어린 소년의 목소리도 포함돼, 수사에 또 다른 미궁을 더했다.

경찰서장의 죽음

서장의 죽음 닷새 뒤인 8월 12일, '괴인 21면상'은 언론에 마지막 성명을 보낸 뒤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성명은 야마모토 본부장의 죽음을 비웃는 한편 "식품 회사들을 괴롭히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는 나쁜 놈들이니, 회사를 괴롭히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많다. 나쁜 놈으로 사는 건 즐겁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이후 범인의 연락은 완전히 끊겼다.

핵심 의문

이 사건의 핵심 의문은 단순하지만 무겁다. 범인은 누구이며, 왜 이렇게까지 했고, 왜 끝까지 잡히지 않았는가.

첫째, 동기가 모호하다. 거액을 요구했지만 단 한 번도 돈을 받지 못했고, 받으려는 시도조차 위험을 무릅쓴 정교한 작전이 아니라 매번 미수에 그쳤다. 금전이 목적이라기엔 너무 비효율적이고, 원한이라기엔 표적이 여러 기업으로 확산됐다.

둘째, 범인은 명백히 조직적이고 기술적이었다. 경찰 무선 도청, 다회선 협박 전화, 광역에 걸친 동시다발 살포와 도주는 단독범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다. 그런데도 130만 명의 수사 인력 앞에서 단 한 명도 꼬리를 밟히지 않았다.

셋째, 갑작스러운 종료다. 1985년 8월, 범인은 누구에게 쫓겨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만두겠다"며 사라졌다. 잡히기 직전이어서가 아니라, 마치 게임이 지루해졌다는 듯한 종료였다.

가설

아래 가설들은 모두 추정이며,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어느 하나도 입증되지 않았고 범인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상태

공소시효 만료는 법적으로 "이제 범인이 자수해도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다. 130만 명의 경찰, 12만 명이 넘는 수사 대상, 풍부한 물증(목소리 테이프·필적·몽타주·도청기·차량)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한 사람의 신원에도 닿지 못했다. 일본 수사사에서 가장 뼈아픈 미제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남은 의문은 여전히 무겁다. 범인은 정말 돈이 목적이었나, 아니면 처음부터 사회와 권위를 향한 거대한 조롱극이었나. 어린아이의 목소리, 여우 눈의 남자, 경찰 무선을 읽던 손—이 모든 단서가 가리키던 사람(들)은 누구였나. 야마모토 본부장의 죽음을 비웃고 사라진 마지막 성명 이후, 그 답은 영원히 어둠 속에 남았다.

이 사건은 미야베 미유키, 시오타 다케시 등 여러 작가의 소설(『죄의 목소리』 등)과 다수의 다큐멘터리에 영감을 주며 일본 사회의 집단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괴인 21면상'은 지금도 일본 미제사건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출처

  1. Glico Morinaga case — Wikipedia (English)
  2. The Monster with 21 Faces — Wikipedia (English)
  3.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 위키백과
  4. 회장님 몸값 90억, 청산가리 과자…제과대기업 흔든 소년 목소리 — 한국일보
  5. Japan's Most Notorious Kidnapping Is Still Unsolved — CrimeRe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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