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억 엔 사건
1968년 도쿄 후추시, 백색 오토바이 순경으로 위장한 남자가 단 몇 분 만에 약 2억 9430만 엔을 실은 은행 차량을 통째로 몰고 사라졌다. 사상자도, 단서도, 범인도 없이 끝난 일본 사상 최대 현금 강탈.
개요
3억 엔 사건이 일본 범죄사에서 전설적 미제로 남은 이유는 그 규모만이 아니다. 무기도, 폭력도, 피 한 방울도 없이 단 몇 분 만에 거액을 빼앗긴 '무혈 강탈'이라는 점, 그리고 연인원 17만 명이 넘는 경찰이 7년간 매달리고도 단 한 명을 체포하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점이 이 사건을 '완전범죄'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이 문서는 확인된 사실과 끝내 풀리지 않은 의문,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려는 여러 가설을 엄격히 구분해 정리한다. 실존했던 용의자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범인으로 확정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한다.
배경
1960년대 후반 일본은 고도경제성장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대기업은 연말이면 종업원들에게 두둑한 상여금(보너스)을 현금으로 지급했고, 이 현금은 은행에서 회사로 대량 운반됐다. 당시에는 계좌 자동이체보다 현금 지급이 일반적이었고, 현금 수송 경비도 오늘날 기준으로는 허술했다.
표적이 된 돈은 도쿄 다마 지역에 있던 도시바 후추 공장 종업원들의 보너스였다. 일본신탁은행 국분지점이 이 현금을 도시바 공장까지 닛산 세드릭(Nissan Cedric) 승용차로 운반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사건 당일 차에는 은행원 네 명이 타고 있었고, 약 2억 9430만 엔이 든 금속 상자들이 트렁크에 실려 있었다.
타임라인
- 1968-12-06일본신탁은행 국분지점장 앞으로 '300만 엔을 내놓지 않으면 집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장이 도착. 은행은 거부, 경찰 약 50명 경호 투입
- 1968-12-10 09:15경은행원 4명이 도시바 보너스 약 2억 9430만 엔을 닛산 세드릭에 싣고 국분지점을 출발해 후추 공장으로 향함
- 1968-12-10 09:21경후추 형무소 북쪽 '학원거리'에서 백색 오토바이 경관으로 위장한 남자가 수송차를 정지시킴. '차에 다이너마이트가 설치됐다'며 은행원 대피 유도 후 차를 몰고 도주(약 3분)
- 1968-12-10 직후범인은 세드릭을 버리고 미리 훔쳐 둔 다른 차량들로 현금 상자를 옮겨 자취를 감춤. 현장에서 위장 백바이 등 약 120여 점의 유류품 발견
- 1968-12-15유력 용의자로 떠오른 19세 소년 S가 청산가리(청산칼륨) 중독으로 사망. 자살로 처리됨. 사망 시점에 강탈된 현금은 발견되지 않음
- 1969-12-1226세 남성이 언론 보도로 용의선상에 오름. 사건 당일 감독 시험을 보고 있었다는 알리바이로 혐의를 벗음
- 1975-12-10형사 공소시효(7년) 만료. 범인 특정 못 한 채 형사 수사 종결
- 1988-12-10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의 제척기간(20년)도 경과. 모든 법적 추궁 가능성 소멸
범행 수법 / 확인된 사실
폭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차 밑의 연기와 불꽃은 발연통을 다이너마이트처럼 보이게 한 연출에 불과했다. 은행원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도시바는 보험으로 손실을 메워 종업원들은 예정대로 보너스를 받았다. 즉 이 사건은 거액이 사라졌음에도 '피해자의 피'가 없는 기묘한 강탈이었다.
핵심 의문
이 사건의 핵심 의문은 명료하다. 범인은 누구였으며, 어떻게 그토록 거대한 수사망을 단 한 번도 건드리지 않고 빠져나갔는가.
첫째, 정보의 비대칭이 너무 컸다. 범인은 도시바가 그날 거액의 보너스를 운반한다는 사실, 경비가 허술하다는 점, 그리고 당시 다마 지역의 경찰력이 학생·과격파 시위 대응으로 분산돼 있었다는 점까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움직였다. 이는 우연한 충동범의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둘째, 유류품이 역설적으로 단서를 지웠다. 120여 점에 달하는 물품은 정보가 넘쳐 보였지만, 대부분 대량생산된 흔한 물건이라 추적이 불가능했다. 단서가 많았다기보다 '의도적으로 흩뿌려진 노이즈'에 가까웠다는 분석이다.
셋째, 수사 자체의 혼선이 있었다. 일부 자료는 사건 초기 수사 주도권이 절도 전담 부서에서 살인 전담 부서로 넘어가면서 절도범 심리에 대한 전문성이 약화됐고, 과도한 언론 노출이 수사를 어지럽혔다고 지적한다. 또한 공개됐던 몽타주는 목격자들이 "범인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신뢰도가 떨어졌다.
가설
아래 가설들은 모두 추정이며,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어느 하나도 입증되지 않았고 범인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아래에 언급되는 실존 인물 가운데 누구도 범인으로 확정된 바 없다.
현재 상태
공소시효 만료는 곧 범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신빙성 있는 자백이나 결정적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 17만 명의 수사 인력, 78만 장의 몽타주, 11만 명의 참고인, 9억 엔이 넘는 수사비를 쏟고도 사건은 한 사람의 신원에도 닿지 못한 채 일본 범죄사 최대의 미제로 남았다.
이 사건은 흔히 '완전범죄'로 불리지만, 다수 전문가는 범인의 천재성보다 행운과 허술한 수사 절차가 겹친 결과였다고 본다. 동시에, 오늘날의 DNA 감식과 도처에 깔린 감시 카메라 환경이었다면 같은 범행은 불가능했으리라는 점에도 의견이 모인다. 한편 수사가 남긴 상처—무고한 피해자들의 파탄과 자살—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강탈'이라는 표현 뒤에 가려진 또 다른 비극으로 기록됐다.
3억 엔 사건은 이후 수많은 영화·드라마·소설·만화에 영감을 주며 일본 사회의 집단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진실이 끝내 밝혀지지 않았기에, 백색 오토바이를 탄 그 남자의 정체는 지금도 미궁 속에 남아 있다.
출처
Related · 관련 기록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사장을 납치하고 청산가리 과자로 일본 열도를 떨게 한 정체불명의 협박범 '괴인 21면상'. 경찰 130만 명을 조롱하며 단 한 명도 잡히지 않은 채 2000년 공소시효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치오지 슈퍼마켓 살인
1995년 7월 도쿄 하치오지의 슈퍼마켓 2층 사무실에서 폐점 정리 중이던 여성 점원 3명이 권총에 살해됐다. 일본에서 드문 총기 범죄였고 금고는 열리지 않았다. 막대한 현상금에도 미검거, 2010년 시효 폐지 뒤에도 미해결로 남았다.

잭 더 스트리퍼
1964~1965년 영국 런던 서부 해머스미스·템스강 일대에서 성노동 여성들을 살해해 나체로 유기한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범. 언론은 '잭 더 스트리퍼'라 불렀다. 시신에서 검출된 도장용 페인트 입자가 유력 단서였으나, 대규모 수사에도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