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홀트 실종
Wikimedia Commons / simon from Austria · CC0 · 테마 이미지
미해결실종

해럴드 홀트 실종

1967년 12월 17일, 호주 총리 해럴드 홀트가 빅토리아주 체비엇 비치에서 거친 파도 속으로 헤엄쳐 들어간 뒤 사라졌다. 현직 총리가 백주에 자취를 감췄지만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38년 뒤 검시관은 익사로 결론지었다.

1967년 12월호주 빅토리아주 체비엇 비치9분 분량

개요

현직 국가수반이 백주 대낮에, 그것도 자기 나라 해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건은 호주를 충격에 빠뜨렸다. 공식 결론은 단순한 익사 사고였지만, 시신이 끝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국 잠수함 납치설부터 CIA 암살설까지 온갖 음모설을 불러왔다. 사건은 2005년에야 처음으로 공식 검시를 받았다.

배경 — 현직 총리

해럴드 홀트는 1966년 1월, 16년 넘게 총리를 지낸 로버트 멘지스의 뒤를 이어 호주 총리에 올랐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을 적극 지지하며 호주군 파병을 늘렸고, 1966년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방문 때 "린든 곁에서 끝까지(All the way with LBJ)"라는 말로 동맹을 강조한 인물이었다.

홀트는 평생 바다를 사랑한 열정적인 수영가이자 작살 낚시 애호가였다. 모닝턴 반도의 별장은 그가 가장 좋아한 안식처였고, 체비엇 비치는 그가 즐겨 찾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 해변은 강한 이안류와 소용돌이로 악명이 높았고, 일반에 개방되지 않은 군 보호구역에 가까운 외진 곳이었다. 안전요원도, 구조 장비도 없는 바다였다.

정치적으로 홀트의 처지는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다. 베트남 파병 확대와 징병제는 국내에서 거센 반발을 샀고, 1967년 들어 그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사라지기 전날인 12월 16일, 그는 멜버른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포츠시 별장으로 내려와 칵테일 파티와 만찬에 참석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활기차고 사교적인 모습이었다.

타임라인

  1. 1966-01-26
    해럴드 홀트, 호주 제17대 총리 취임
  2. 1967-05-20
    체비엇 비치 인근에서 익사할 뻔한 사고 발생
  3. 1967-12-16
    포츠시 별장 도착, 칵테일 파티와 만찬 참석
  4. 1967-12-17 정오
    체비엇 비치에서 거친 파도 속으로 수영, 바다로 끌려가 사라짐
  5. 1967-12-17 오후
    경찰·해군·헬기·잠수팀이 투입돼 대규모 수색 시작
  6. 1967-12-19
    존 매큐언, 임시 총리로 취임 선서
  7. 1967-12-22
    멜버른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추모식 거행
  8. 1968-01-05
    공식 수색 종료 — 시신·유류품 미발견
  9. 1969-03
    멜버른에 '해럴드 홀트 기념 수영장' 개관
  10. 2005-09-02
    빅토리아주 검시관 그레이엄 존스턴, '익사' 결론 발표

그날 — 체비엇 비치

1967년 12월 17일, 홀트는 친구이자 동행이던 마저리 길레스피(Marjorie Gillespie)와 그녀의 딸 바이너, 그리고 두 청년 마틴 심슨, 앨런 스튜어트와 함께 체비엇 비치에 도착했다. 정오를 막 지난 시각, 바다에는 큰 너울이 일었고 물 위로 거센 해류와 소용돌이가 또렷이 보였다.

오후 1시 30분경부터 경찰이 도착하며 수색이 시작됐고, 그날 저녁까지 190명이 넘는 인원이 투입됐다. 수색은 점차 340명 이상으로 늘어 헬기와 보트, 경찰 잠수부와 두 개의 해군 잠수팀까지 동원한 대규모 작전이 됐다. 그러나 한 해군 잠수 지휘관은 훗날 "총리를 찾을 가능성은 사실상 그 일요일 밤에 이미 사라졌다"고 회고했다.

공식 수색은 1968년 1월 5일에 종료됐다. 거센 파도와 깊은 바다, 백상아리가 출몰하는 해역이라는 조건이 겹쳐, 시신은 끝내 회수되지 않았다.

한편 호주 정치는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에 빠졌다. 12월 19일 부총리 존 매큐언이 임시 총리로 취임 선서를 했고, 이듬해 1월에는 존 고턴이 자유당 대표로 선출돼 정식 총리직을 이었다. 12월 22일 멜버른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영국의 왕세자 찰스, 해럴드 윌슨 영국 총리,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 우 탄트 유엔 사무총장 등 각국 정상과 사절이 대거 참석해, 시신 없는 추모식을 지켜봤다.

핵심 의문

이 사건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시신이 왜 한 조각도 나오지 않았는가. 보통 익사 사고에서는 시신이나 옷, 수영복 같은 유류품이 며칠 뒤 해안으로 떠밀려 오기 마련이지만 홀트의 경우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공백이 온갖 추측의 빈틈이 됐다.

둘째, 현직 총리가 어떻게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었는가. 국가 최고 지도자가 경호도 변변히 없이 위험한 바다에 홀로 뛰어든 정황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이는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의문이 곧 음모의 증거는 아니다.

가설

현재 상태 — 2005 검시

검시 결론에도 불구하고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기에, 사건은 사실상의 미해결로 남아 있다. 가장 큰 아이러니는 1969년 멜버른 교외에 문을 연 공공 수영장의 이름이다. 물을 사랑하다 물에서 사라진 총리를 기리기 위해, 그 수영장은 해럴드 홀트 기념 수영장(Harold Holt Memorial Swimming Centre)으로 명명됐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기리는 수영장이라는 기묘한 모순처럼, 해럴드 홀트의 실종은 명백한 사고이면서도 끝내 닫히지 않은 빈칸으로 남았다. 시신 없는 익사, 결론은 났으나 증거는 없는 죽음. 그것이 한 나라의 총리가 남긴 마지막 미스터리다.

출처

  1. Disappearance of Harold Holt — Wikipedia
  2. Harold Holt's disappearance — National Archives of Australia
  3. The Prime Minister Who Disappeared — Smithsonian Magazine
  4. Disappearance of a Prime Minister — Library of Congress Law Blog
  5. Graeme Johnstone (State Coroner) — Wikipedia

Related · 관련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