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결미제사건

잭 더 리퍼

1888년 가을, 런던 빈민가 화이트채플에서 다섯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됐다. 범인은 신문사에 조롱 편지를 보내 스스로 '잭 더 리퍼'라 칭했지만, 130년이 지나도록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1888년영국 런던 이스트엔드 화이트채플8분 분량

개요

잭 더 리퍼는 근대 최초의 '미디어 연쇄살인'으로 불린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대중 신문이 폭발적으로 늘던 때였고, 범인의 잔혹함과 조롱, 경찰의 무력함이 매일 활자로 중계되며 공포를 전국으로 퍼뜨렸다. 그 결과 한 무명의 살인자는 130여 년이 지나도록 전 세계가 정체를 추리하는 전설이 됐다. 이 사건의 핵심은 '누가 죽였는가'를 넘어, 왜 우리는 끝내 답을 못 찾는가에 있다.

배경 — 1888년의 화이트채플

19세기 말 화이트채플은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였다. 아일랜드·유대계 이민이 몰려 인구가 약 8만 명까지 불었고, 한 방에 여러 가족이 살았으며, 위생과 치안은 열악했다. 통계는 이 가난의 깊이를 보여준다—이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의 절반 이상이 다섯 살을 넘기지 못했고, 경찰은 구역 내 성매매 여성을 1,2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가난에 떠밀려 거리로 나선 여성들이 바로 리퍼의 표적이 됐다. 그들은 잠잘 돈조차 없어 밤거리를 떠돌았고, 어두운 골목에서 손님을 기다리다 변을 당했다. 사회의 가장 약한 자리에 있던 이들이었기에, 그 죽음은 더욱 무방비했다.

정전(正典) 다섯 피해자

대다수 연구자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는 다섯 명을 '정전 5인(canonical five)'이라 부른다.

  1. 1888-08-31
    메리 앤 니컬스 — 벅스 로에서 살해
  2. 1888-09-08
    애니 채프먼 — 핸버리가에서 살해, 장기 적출
  3. 1888-09-30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캐서린 에도스 — 같은 밤 '이중 사건'
  4. 1888-09-30
    골스턴가 낙서 발견, 경찰 commissioner가 새벽에 지움
  5. 1888-11-09
    메리 제인 켈리 — 밀러스 코트 실내에서 가장 잔혹하게 살해

수법과 현장

피해자들은 대개 목이 깊이 베인 뒤 복부가 절개됐고, 적어도 세 명에게서는 자궁·콩팥 등 내부 장기가 적출됐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범인이 해부학적 지식을 가진 의사·도살업자일 것이라는 추측이 퍼졌다. 다만 검시의 토머스 본드는 초기 범죄자 프로파일에서 범인이 외과적·해부학적 전문 지식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 통설과 어긋나는 소견을 남겼다.

범행은 주로 주말이나 월말에 집중됐는데, 일부 연구자는 이를 범인이 평일에 정규 직업을 가진 지역 주민일 가능성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확증되지 않았다.

조롱 편지와 '잭 더 리퍼'

진위와 무관하게, '잭 더 리퍼'라는 이름은 이 편지에서 태어나 사건의 상징이 됐다. 얼굴 없는 살인자에게 이름이 붙는 순간, 그는 통계 속 범인에서 신화 속 괴물로 바뀌었다.

골스턴가 낙서

에도스 살해 현장에서 잘라낸 피 묻은 앞치마 조각이 발견된 골스턴가 벽에는, 분필로 쓴 문구가 있었다—"유대인은 아무 일에도 책임지지 않을 자들이다"라는 모호한 내용이었다. 경찰 총수 찰스 워런은 반(反)유대 폭동을 우려해 날이 밝기 전 이 낙서를 지우라고 명령했다. 사진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이 낙서가 범인의 것인지조차 끝내 확인되지 않았고, 성급한 증거 인멸이라는 비판이 오래 남았다.

수사와 한계

런던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2,000명 이상을 탐문하고 300여 명을 조사했으며 80명가량을 구금했다. 스코틀랜드 야드의 프레더릭 애버라인 경위 등이 투입됐고, 화이트채플 자경단은 별도의 현상금과 사설탐정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지문·DNA 같은 현대 과학수사가 없던 시대에, 어두운 골목에서 빠르게 이뤄진 범행의 단서를 잡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용의자들

신화가 된 살인마 — 리퍼올로지

잭 더 리퍼는 단순한 미제 사건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사건을 연구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리퍼올로지스트(Ripperologist)'라 부르고, 화이트채플 일대에는 사건 현장을 도는 투어가 매일 열린다. 100편이 넘는 책과 영화, 드라마가 '진범'을 둘러싸고 쏟아졌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안개 낀 골목과 정체불명의 살인마라는 이미지는 근대 추리물과 공포물의 원형이 됐다.

리퍼올로지의 역설은, 130년의 열정적 연구가 진범에 대한 합의에는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했다는 데 있다. 새로운 '결정적 증거'가 발표될 때마다 곧 반박이 따랐고, 사건은 오히려 더 두꺼운 추측의 지층에 묻혔다.

핵심 의문과 현재 상태

잭 더 리퍼 사건의 핵심 의문은 단순하지만 영원하다. 그는 누구였는가, 그리고 왜 11월 이후 살인이 멈췄는가. 범인이 죽었는지, 수감됐는지, 정신병원에 갇혔는지, 이민을 갔는지—아무것도 알 수 없다.

매년 수많은 책과 다큐멘터리가 '진범'을 발표하지만, 어느 것도 학계의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어쩌면 이 사건이 끝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다섯 여성의 죽음이라는 비극보다 얼굴 없는 공포를 메우려는 우리의 끝없는 상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작 가장 자주 잊히는 것은, 화이트채플의 가난 속에서 스러진 다섯 사람의 이름이다.

출처

  1. Jack the Ripper — Wikipedia
  2. Casebook: Jack the Ripper — 1차 사료 아카이브
  3. The Whitechapel Murders — Metropolitan Police (영국 경찰 기록)
  4. Jack the Ripper (fl. 1888) — 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
  5. Who was Jack the Ripper? — BBC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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